금강산 해수욕장에서 남측 관광객이 북한 군인의 총격을 받고 사망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면서 현대그룹이 사상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남북관계 악화로 지지부진했던 대북사업의 고삐를 죄려던 현정은 회장(사진)의 계획도 중대 기로를 맞게 됐다. 지난 10여년간 숱한 우여곡절 속에서도 금강산 관광 사업을 지켜낸 현 회장이 난관을 극복해낼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현정은호(號) 최대 암초

올해 금강산 관광 10주년과 현 회장 취임 5주년을 맞은 현대그룹이 제2의 도약을 위해 야심차게 준비했던 대북사업 추진 계획에 빨간 불이 켜졌다.

오는 17일 개성공단 내에 문을 여는 평양식당(남북 공동운영) 개관행사에 참석해 이명박 정부 출범 후 남북관계 경색으로 차질을 빚고 있는 백두산 직항로 관광 및 금강산 비로봉 관광 등 대북사업에 활기를 불어넣으려던 현 회장의 방북 일정은 무기한 연기됐다. 다음 달 금강산에서 갖기로 한 현대그룹 신입사원 수련회를 비롯,오는 10월 평양에서 성대하게 치르려던 유경 정주영체육관 개관 5주년 기념행사와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 추도식도 '순항'을 장담하기 어렵게 됐다.

하루 방문객 500명 이상을 기록하며 차질없이 진행 중인 개성관광도 '불똥'이 우려되고 있다. 적반하장격으로 책임소재를 남측으로 떠넘기는 북측의 태도가 바뀌지 않는 한 관광객들의 신변안전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업계에선 금강산 관광이 9월까지 중단되면 북한 관광 비즈니스를 총괄하고 있는 현대아산의 피해액이 400억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아산은 1998년 소떼방북과 금강호 출항으로 시작,올 6월까지 194만명의 관광객을 돌파한 금강산 관광이 올해 10돌을 맞자 최근 '함께한 10년,함께할 100년'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만드는 등 대북사업에 공을 들여왔다.

현대그룹은 지난해 9조5260억원의 매출과 6772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현 회장 취임 후 4년 만에 사상 최대의 실적을 거두자 올해 매출 11조원과 5년 연속 흑자 달성을 목표로 내걸고 공격경영에 돌입했다. 현 회장은 현대건설 인수 의지를 거듭 강조하며 대북 SOC(사회간접자본) 진출 가능성도 내비쳐왔다.

◆'뚝심'으로 위기 극복 가능할까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건 이번이 다섯 번째다. △1999년 6월 금강산 관광객 민영미씨가 북측에 억류돼 40여일 △2002년 9월 태풍으로 10여일 △2003년 4월 북한 내 사스(SARS.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 발생으로 두 달 △2003년 8월 정몽헌 회장의 자살로 1주일간 중단됐었다.

그러나 금강산 해수욕장이 문을 연 지 만 하루 만에 터진 관광객 피습 사태는 북측 군인의 일방적 발포로 벌어진 데다 아직까지 북측의 해명과 사과조차 없어 남북 당국 간 힘겨루기로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사태의 심각성이 전과 다르다.

그러나 고비마다 "하늘이 맺어준 북한과의 인연을 민족화해의 필연으로 만들어가야 한다"며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뚝심으로 정면돌파를 택했던 현 회장이 이번에도 대북관광 사업을 포기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현 회장은 2005년 김윤규 부회장 경질을 이유로 북한 당국이 금강산 관광객 규모를 절반으로 줄이고 개성공단 및 백두산 관광 협상을 거부했을 때나,2006년 북한 핵실험 이후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등 남북경협사업이 존폐위기에 처했을 때도 임직원들에게 편지를 보내는 등 특유의 뚝심으로 위기를 정면돌파해왔다. 현 회장은 현재 외부와 연락을 두절하고 자택에서 향후 해결책을 모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미희 기자 iciic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