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댕갤러리에 설치된 로댕의 작품 '지옥의 문'을 감상하고 집에 가던 중 우연히 슈퍼마켓을 지나다 너저분하게 쌓여있는 상자들을 봤는데 마치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 같더군요. 인간들도 상자처럼 고정된 틀 안에 갇혀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죠.그 틀을 깨고 자유를 발산하려는 인간의 절실한 몸부림을 조형언어로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에서 오는 16일~8월5일 개인전을 갖는 한국 추상화단의 1세대 작가 김봉태 화백(71)은 "틀에서 벗어나 있는 상자들의 모습을 통해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 화백은 박서보 김창열 윤명로 정상화씨 등과 함께 앵포르멜(서정추상)의 한 축을 이루었으며,근대미술의 계보라 할 수 있는 '60년 미술협회'와 '악뛰엘(Art Actuel)'의 창립 멤버로 한국 추상미술의 맥을 이어오고 있다.

현대미술사의 교과서로 불리는 에드워드 루시스미스의 '아트 투데이'에 소개된 그는 1963년 미국 캘리포니아로 옮겨간 후 대도시와 그를 둘러싼 자연 환경에서 포착한 생각을 2,3차원 형태로 형상화해왔다. 이번 출품작은 2004~2008년 캔버스와 알루미늄 판 위에 아크릴 및 폴리우레탄을 이용해 제작한 신작 '댄싱 박스(Dancing box)' 시리즈 50여점.평면과 조각,설치의 영역을 넘나들며 끊임없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안팎의 경계와 동심처럼 순수한 자유를 다룬다.

"밝고 흥겨운 우리 민족성을 담아내는 동시에 자유롭고 긍정적인 삶을 표현했지요. 사람들이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면서 새로운 희망을 갖도록 말이죠.조그마한 사랑이라도 나눠주며 긍정적이고 미래지향적으로 살기를 바라는 마음도 전하고 싶었습니다. "

초기의 '그림자''비시원'을 거쳐 1990년 중반의 '창문' 연작에 이은 최근의 '댄싱 박스' 시리즈는 원색의 아름다움에 상자라는 기하학적 형태를 덧붙여 색면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작품이다. 상자라는 틀은 안과 밖의 경계인 동시에 외부와 내부의 통로이기도 하다. 서로 다른 색채가 대비되거나 조화를 이루는 화면은 긴장감을 유발하는 시각적인 효과까지 준다. 오방색을 사용하면서도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통일성을 유지하는 등 색채구사력이 뛰어나다.

김 화백은 2002년 이화여대 교수직에서 정년 퇴임했다. 이우환 윤명로 김봉태 김종학씨 등과는 서울대 회화과 동기생이다.

(02)2287-3563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