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왕의 남자'와 '라디오 인생' 등 휴먼 드라마로 명장 반열에 오른 이준익 감독이 신작 '님은 먼 곳에'를 오는 24일 선보인다. 1970년대 초 베트남 전쟁을 배경으로 진실한 사랑의 의미를 묻는 작품.한국 영화 평균 순제작비의 2배 규모인 70억원을 투입해 태국에서 로케이션 촬영했다. 1000여명의 태국 군인이 엑스트라로 출연했고,300여정의 총기류,8대의 헬기 등이 볼거리를 제공한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전쟁 신은 사랑이란 주제를 돋을새김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전쟁 드라마가 아니라 러브 스토리인 까닭이다.

'님은 먼 곳에'는 시골 새댁 순이(수애)가 전장에 뛰어든 남편(엄태웅)을 만나기 위해 밴드 리더 정만(정진영)의 위문공연단에 합류,베트남으로 떠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도입부에서 남편이 순이에게 던진 "니 사랑이 뭔지 아나"란 대사는 전편을 관통한다. 이후 남편은 끔찍한 전장에서,순이는 험난한 여정에서 사랑의 의미를 깨달아간다.

베트남 전쟁에 관한 영화들이 참전 용사들의 끔찍한 경험이나 후일담 위주로 그려졌던 것과 달리 아내의 시선으로 담아낸 것이 신선하다. 남성 본위의 전쟁을 여성의 시각으로 그린 점도 평가할 만하다.

청순한 순이는 점차 짙은 화장과 야한 쇼걸 복장의 가수 써니로 변모하는데,이는 먼 타국에서 일어난 전쟁일지라도 많은 사람들을 곤경과 타락으로 이끄는 것을 시사한다. 그러나 순이는 끝까지 중심을 잃지 않는다. 사랑의 힘이다. 순이가 전장에서 만난 남편의 따귀를 때리다가 가슴을 치면서 울음을 터뜨리는 엔딩신은 '사랑은 용서'라고 말하는 듯하다.

이 감독은 사랑의 의미를 전쟁신과 결부시키며 효과적으로 제시한다. 순이가 평화롭게 노래를 부르는 장면 뒤에는 주먹질이 난무하는 살벌한 병영신이 이어진다. 피튀기는 전투 장면 위에 총포 소리 대신 순이가 부르는 노래 '님은 먼 곳에'를 실어 전달한다. 전쟁의 혹독함으로 인해 사랑의 절박함도 강화된다.

이 감독의 전작들에 비해 웃음의 미학은 약화됐다. 익살과 해학을 바탕에 깔았던 이전과 달리 베트남전을 다룬 만큼 시종 진지한 접근 양식을 취했기 때문이다. 다만 순이가 남편을 만나기 위해 베트남으로 떠나게 되는 동기 부여가 미흡한 것이 아쉽다. 15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