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눈은 속일 수 있어도 과학의 눈은 속일 수 없다."

각종 강력 범죄가 날로 증가하고 범죄 수법도 치밀해지면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목격자도,눈에 띄는 흔적도 없어 자칫 미궁에 빠질 뻔했던 강력사건들이 국과수의 증거물 감정을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되는 경우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있었던 숭례문 방화사건,고속도로 복어독 의문사 사건,필리핀 재력가 청부살인사건 등에서도 국과수는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숭례문 방화사건에서 국과수 고분자연구실은 우리나라에서도 인기리에 방영 중인 외화 'CSI 과학수사대'에서 자주 등장하는 '트레이스 에비던스(trace evidence.눈에 보이지 않는 먼지 한 톨,실 한 올 등의 미세 증거물)' 분석 방법을 활용했다.

이는 용의자나 피해자의 손톱 밑에 남아 있는 섬유,옷 등에 뭍은 토양을 분석,용의자나 피해자가 물리적인 접촉이 있었는가 혹은 용의자가 현장에 있었는가를 판별해내는 방법이다.

이번 사건에서 경찰은 용의자를 검거했지만 목격자가 전혀 없어 기소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국과수는 용의자 신발에서 숭례문 지붕에 처리된 특수 페인트를 검출,용의자가 숭례문 지붕 위에 올라갔었던 사실을 증명했다.

2007년 9월 보성 '노인과 바다' 연쇄 살인 사건에서는 국과수 음성분석실의 역할이 컸다.

전남 고흥군 해안에서 발견된 두 명의 사체 중 한 명의 휴대폰으로 말 없는 전화가 119에 걸려왔던 것이 경찰 수사 결과 확인됐다.



국과수는 119 통화내용에 포함된 기계음과 용의자 소유의 선박 엔진음이 같다는 분석 결과를 내놨고,경찰은 이를 토대로 용의자를 검거할 수 있었다.

아직 수사가 진행 중인 '필리핀 청부살인사건'에도 적용된 이 기술은 '화자(話者) 식별법'이다.

녹음된 소리의 억양,공명 진동수,기본 진동수 등을 분석해 범인과 용의자의 성문에서 나오는 고유한 음성적 특성을 찾아낸 후 동일인 여부를 판별한다.

김태훈 음성연구실장은 "음성은 지문이나 치아만큼이나 개인별로 독특한 특성을 가진다"며 "일치하는 단어 20개만 있으면 동일인 여부를 완벽하게 판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종결된 '복어독 의문사 사건'은 국과수도 해결하기 쉽지 않았다.

임미애 독극물과장은 "복어 독을 실수로 먹게 될 수는 있지만 순수한 테트로도톡신으로 사망에 이르는 사건은 매우 드물다"며 "한 달 동안 각종 약물검사를 총동원했지만 약물이 검출되지 않아 천연독 분야에 초점을 맞춰서야 사인을 밝힐 수 있었다"고 말했다.

1955년 설립돼 현재 200여명의 석.박사급 연구원이 소속된 국과수는 지난해에만 약 3576건의 부검,5만2309건의 유전자 감식 등을 수행했다.

이원태 국과수 소장은 "CSI 드라마 등으로 과학수사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획기적으로 바뀌어 고무적이다"면서 "하지만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현실 속에서의 과학수사는 훨씬 어렵고 힘든 작업이라 사명감이 있어야만 가능하다"고 말했다.

황경남 기자 knh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