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박 건조경험이 전혀 없는 국내 중소기업이 쿠웨이트 정부로부터 1500만달러짜리 선박을 수주했다.

이번 계약은 조선소 부지도 없이 '계약만 하면 배는 세계 최고로 만들어 주겠다'는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같은 방식의 협상을 통해 성사된 것이어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정 명예회장은 1971년 조선사업계획서와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짜리 지폐로 영국에서 8000만달러를 유치한 뒤 그리스로부터 선박 2척을 선주문 받는 데 성공했다.

조선 기자재 전문업체인 STI(대표 김대규)는 최근 쿠웨이트 소방청이 발주한 석유시추선 선단용 특수소방선 건조사업을 947만유로에 수주했다고 3일 밝혔다.

이 소방선은 전장 39m 길이의 중형급으로, 쿠웨이트 해상 석유시추선 인근에 배치된 뒤 시추선이나 보급선 등에 화재가 발생하면 긴급진화에 나서게 된다.

회사는 2010년 하반기까지 소방선을 건조,쿠웨이트 소방청에 인도한 뒤 대금을 완납받게 된다.

이 회사가 선박을 수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 대표는 "향후 6개월간의 설계기간 중 조선소 부지와 장비,자금,인력을 직접 조달하겠다며 쿠웨이트 정부 측을 설득해 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회사는 현재 국내 지자체 한곳과 5000평 규모의 조선소 부지 임대 협상을 진행 중이다.

이번 계약은 중국 스리랑카 알제리 등 4개 해외 중견 조선소와의 경합을 벌인 뒤 성사된 것이라고 회사 측은 덧붙였다.

김 대표는 "중국 업체와 최종 계약을 하려던 쿠웨이트 측에 한국의 조선기술과 품질관리기법이 훨씬 우수하다는 점을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집중 부각시킨 것이 주효했다"고 소개했다.

뚜렷한 강자가 없는 소형 특수선 업계의 특성도 작용했지만,한국 조선산업이 갖고 있는 긍정적 이미지가 무경험의 약점을 극복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이 됐다는 설명이다.

김 대표는 "일면식도 없는 핀란드 노르웨이 캐나다 조선부품 업체들까지 자발적으로 나서 '중국보다는 조선산업기반이 훨씬 탄탄한 한국쪽이 낫다'고 쿠웨이트 측에 귀띔하는 등 해외조선업계의 친한(親韓)분위기도 영향을 미친것 같다"고 말했다.

회사는 이번 소방선 수주를 계기로 향후 각국에서 발주되는 중소형 특수선 수주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것으로 보고 있다.

김 대표는 "첫 계약이 성공적으로 이행될 경우를 전제로 이미 추가 발주를 제의받은 상태"라고 말했다.

서울대 조선공학과를 나와 영국 서섹스대에서 공학박사(인공지능) 학위를 받은 김 대표는 2001년 STI를 창업한 뒤 액화천연가스 운반선용 온도감지장비 국산화를 시작으로 2005년 세계 최소형 선박용 블랙박스 VDR(Voyage Data Recoder)를 개발하는 등 기술력을 축적해 왔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