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골프를 그만두게 할까도 생각했는데 이렇게 큰 대회에서 우승하다니.지난 10년동안 한 번도 생일을 챙겨주지 못해 이번 대회에서 5위안에 들면 한국에서 생일상을 차려주겠다고 약속했는데…."

딸이 하루아침에 세계적 선수로 우뚝 선 과정을 지켜본 어머니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말을 잇지 못했다.

한국여자골프에 또한명의 신데렐라가 탄생했다.

아무도 우승후보로 주목하지 않았던 박인비(20)가 그 주인공이다.

박인비는 30일(한국시간) 끝난 제63회 US여자오픈(총상금 325만달러)에서 합계 9언더파 283타를 기록하며 프로 첫승을 거뒀다.

3라운드까지 그보다 앞서있던 세계랭킹 4위 폴라 크리머와 ‘루키’ 스테이시 루이스(이상 미국),그리고 동타였던 ‘노장’ 헬렌 알프레드손(43·스웨덴)을 멀찍이 따돌린 완벽한 역전우승이었다.

또 유일하게 나흘 내내 언더파를 기록하며 이 대회 최연소(19세11개월18일) 챔피언이 됐다.

이 대회 역사상 20세가 안된 선수가 우승한 것은 박인비가 처음이다.

우승상금은 일반 대회의 2배수준인 58만5000달러(약 6억원).

3라운드까지 선두와 2타차의 공동 3위였던 박인비는 최종일 첫 홀부터 행운의 버디를 기록했다.

티샷이 러프에 떨어진데 이어 두번째샷마저 그린너머 러프에 멈췄지만,세번째 칩샷이 바로 홀속으로 들어간 것.그 행운은 바로 뒤에서 플레이한 챔피언조 선수들의 몰락과 오버랩되면서 그를 단숨에 선두로 올려놓았다.

챔피언조의 크리머와 루이스는 약속이나 한듯 ‘버디 홀’인 2번홀(파5·길이473야드)에서 ‘더블 보기’를 하며 선두 자리를 박인비에게 내주고 만 것.3번홀에서 단독선두가 된 박인비는 그 이후 한 차례도 선두권에서 내려오지 않았고 14번홀을 마칠 즈음에는 2위권과 4타차이로 벌리며 우승을 확정짓다시피 했다.

1타차 선두였던 9번홀(파4)에서 ‘보기’ 위기를 맞았으나 4m거리의 내리막 파세이브 퍼트를 성공하면서 고비를 넘겼다.

후반들어 박인비와 추격자들의 타수차가 벌어지면서 미국 선수의 우승을 ‘기대’했던 갤러리들에게는 좀 맥빠진 마무리가 되고 말았다.

10년전 박세리가 이 대회에서 맨발 투혼으로 우승한 이틀후 골프에 입문한 박인비는 미국LPGA투어 데뷔연도인 지난해 이맘때쯤 골프를 그만둘까도 생각했다고 한다.

2007년 US여자오픈전까지 출전한 여덟개 대회에서 모두 커트탈락했기 때문.그때까지 받은 상금이 고작 2만2000달러로 숙식비에도 모자랄 정도였다.

그러나 작년 이 대회에서 공동 4위를 한 것을 계기로 다시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고 마침내 골프입문 10년째,투어데뷔 2년째에 ‘큰 일’을 냈다.

박인비는 박세리 박지은 김주연 장 정에 이어 한국선수로는 다섯번째 ‘메이저 퀸’이 됐다.

또 시즌초반 우승 가뭄에 허덕였던 한국선수들은 6월초 이선화의 긴트리뷰트 우승을 시작으로 지은희의 웨그먼스LPGA대회 우승뒤 1주만에 다시 정상에 오르며 하반기 전망을 밝게 했다.

한편 올해까지만 현역선수로 활약한다고 선언한 아니카 소렌스탐(스웨덴)은 이날 18번홀(파5)에서 보기드문 이글을 기록,이번 대회들어 가장 큰 박수를 받았다.

드라이버샷 실수로 레이업을 한뒤 홀까지 199야드를 보고 친 6번아이언 서드샷이 홀속으로 파고든 것.갤러리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성으로 ‘골프 여제’의 고별무대를 축하해주었다.

/에디나(미 미네소타주)=김경수 기자 ksm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