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영그룹의 이종환 회장(84)은 유난히 풍파를 많이 겪은 1세대 기업인입니다.

일본 메이지대 경상학과를 수료한 그는 일제 시대에 학병으로 끌려가 소ㆍ만 국경과 오키나와를 오가면서 수없이 사선을 넘나들었다고 합니다.

사업도 플라스틱 바가지를 만드는 작은 공장에서 출발했지요.

삼영화학공업주식회사를 창업한 시기가 1958년이니 올해로 반세기가 되는군요.

전쟁 직후의 척박한 땅에서 맨주먹으로 일으킨 기업이 이제는 극초박막 커패시터 필름을 생산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 섰지만 그 속에는 남모르는 좌절과 고뇌의 주름이 깊게 파여 있습니다.

자신이 세운 국제전선을 1973년 대한전선과 금성전선에 넘기기도 했지요.

10여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그룹으로 몸집이 커지는 과정에서도 온갖 곡절을 겪었습니다.

그런 그가 팔순을 앞둔 2002년에 '생애 최고의 사업'을 새로 시작했습니다.

출연기금 6000억원에 매년 장학금으로만 150억원을 지급하는 국내 최대규모의 장학재단을 세운 겁니다.

자신의 이름을 건 '관정이종환교육재단'이 공식 명칭입니다.

그는 최근에 펴낸 자서전 <정도>(관정교육재단 펴냄)에서도 장학재단 얘기부터 시작하는군요.

미국에 조기유학을 갔다 자폐증에 걸린 둘째 아들을 보면서 '자식에게서 이루지 못한 세계 1등 인재의 꿈을 남의 자식을 통해서라도 이뤄보자'며 장학재단 설립을 결심했다는 고백,결심을 하고서도 막상 결정을 내리는 데까지는 몇 해 동안의 '밤잠 설치는 숙성 기간'이 필요했다는 얘기도 들어있습니다.

특히 재산상속과 관련해서 "잘못하면 당대 아니면 그 다음 대에 망하는 경우도 흔히 보았는데 2세가 변화와 혁신의 물결을 타지 못할 경우 몰락은 시간 문제"라고 말한 대목을 오래 음미하게 됩니다.

자수성가한 사람들이 성공하는 경우가 많고,스스로 일어난 사람들이 큰돈을 버는 예가 많듯이 큰 부를 이룬 사람들 중에 위대한 기부자가 많습니다.

워런 버핏이나 빌 게이츠가 대표적인 경우죠.

우리 나이로 여든 다섯인 이 회장의 생각도 그렇군요.

'6000억원을 사회에 환원하고 세상을 얻은' 그의 인생 철학은 마지막 장의 소제목에 그대로 녹아 있습니다.

'만수유(滿手有)했으니 공수거(空手去)하리!'

문화부 차장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