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크루그먼 미래를 말하다
폴 크루그먼 지음│예상한 외 옮김│현대경제연구원북스│360쪽│1만8000원

현실 문제에 적극적인 의견을 개진하는 것으로 유명한 폴 크루그먼 교수.그가 4년 만에 발표한 신작 ≪미래를 말하다(원제:The Conscience of a Liberal)≫는 미국의 근대 정치경제사에 대한 고찰이라 할 수 있다.

원제에서 알 수 있듯이 열렬한 진보주의자인 크루그먼은 미국 내의 정치적 양극화와 중산층 몰락으로 인한 계층 간의 불평등 심화라는 화두를 통해 '도금시대'(1870~90년대)부터 현재까지 미국 역사의 발자취를 살펴보고 있다.

크루그먼은 루스벨트 대통령이 대공황 시기에 경제를 부흥시키기 위해 사용한 대표적 총수요관리정책인 뉴딜정책이 경제적 불평등에 관한 한 매우 중요한 변화의 계기가 되었음을 강조한다.

뉴딜정책 이전의 미국은 명목상 민주주의였지만 부와 권력 불평등이 만연했고 대다수 국민들의 경제적 이해를 대변하는 것에는 실패했던 시절로 규정하고 있다.

이 기간에는 금권정치가 만연했고 보수주의적 엘리트들과 자금력이 풍부했던 지배층으로 인해 부자들에게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 어려웠다.

자연적으로 일반 국민들의 삶은 열악할 수밖에 없었고 보수주의자들은 오랫동안 모든 면에서 우월적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러한 도금시대는 대공황이라는 역사적 계기를 통해 종말을 고하고 '대압착(Great Compression)의 시대'가 도래한다.

대압착의 시대란 1920~50년대 소득격차가 줄어든 현상,즉 부유층과 노동자계급의 차이가 급격히 줄고 노동자 사이의 임금차도 줄어든 현상을 가리킨다.

크루그먼은 이 시대야말로 상대적으로 중산층이 많고 경제적 평등이 실현된 이상적인 사회임을 개인적인 소회와 통계적 자료를 통해 강조한다.

'무엇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중산층 중심의 사회였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소득이 대폭 늘어난 수천만 미국인들이 도시 빈민가와 농촌의 가난에서 벗어나 자신의 집을 소유하고 전에 없이 안락한 삶을 누렸다.

반면,부자들은 설자리를 잃었다.

그들은 수적으로 밀렸고,부유한 중산층에 비하면 대단히 부유하지도 않았다.

빈민들은 그 수가 많지 않았고 경제적 공동체의식이 두드러졌다.

경제적으로 균등했던 미국은 정치적으로도 중도 노선을 지켰다.

'

뉴딜정책은 부자들로부터 상당한 양의 세금을 거두어 감으로써 이 시기 부자들의 소득과 재산은 크게 줄어들게 된다.

반면에 중산층의 실질소득은 늘어나고 강한 노동조합의 부활로 인해 육체노동자들과 중산층들의 황금기가 도래한다.

'1920~50년대 소득격차가 크게 준 이유 가운데 하나는 부유층 소득이 줄었기 때문이다.

1950년대 중반에는 미국 최고 부유층 1%의 세액공제 후 실질소득이 전 세대보다 20~30% 정도 줄었다.

그리고 상위 1% 중 상위 10%의 실질소득은 1920년대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반면 중산층 가정의 실질소득은 1929년 이후 두 배 정도로 늘었다.'

그러나 이 시기는 1960년대의 혼란을 경험하면서 끝난다.

1960년대 미국은 경제적 번영과 안정감이 컸지만 동시에 가치관의 혼란으로 방황하고 있었다.

히피문화와 거듭되는 반전데모로 대표되는 이 시기에 대다수 미국민들은 범죄율 증가,문란한 성관계,동성 간의 결혼 등을 통해 미국 사회의 전통적 가치가 붕괴되고 있다는 불안감에 휩싸이고 이는 새로운 보수주의의 등장으로 이어지게 된다.

저자는 1970년대를 기점으로 태동하기 시작해 1980대 레이건 대통령 시대부터 다져진 신보수주의적 사고는 정치적으로 양극화를 진행시키고 경제적으로는 소득불평등을 심화시킴으로써 중산층이 미국 사회의 중추적 역할을 더 이상 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경제사적으로 케인스주의자임을 자처하는 크루그먼은 일관성 있게 작은 정부와 시장경제에 대한 신봉은 잘못된 이데올로기이며 사회안전망 확충과 국민의료보험제도 도입과 같은 적극적인 정부의 개입만이 사회가 발전하는 대안임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책의 마지막 부분은 민주당 대통령의 선출만이 미국 사회가 나아가야 할 길이라는 것을 재차 주장하고 있다.

소득 양극화와 사회적 불평등 심화라는 문제에 직면한 세계 각국들에 시사하는 바가 있지만 균형적 시각이라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정치적 아젠다에 집중한 감이 있다.

미국 내의 문제에는 매우 진보적인 저자가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적인 양극화에 대한 반성은 보이지 않는다.

주류경제학의 입장에서 본다면 수긍하기 어려운 부분들도 눈에 띈다.

새로운 뉴딜정책을 주장하지만 뉴딜정책이 실업률을 그다지 낮추지 못했고 실제 실업률이 낮아진 것은 2차 세계대전 때문이었다는 견해도 있다.

정부의 일방적인 경제안정화 정책은 장기적 실효성을 거두기 어렵다.

만성적 실업과 침체로 시달리는 유럽의 사회복지제도를 따라가야 한다거나 쇠퇴한 노조를 되살려야 한다는 급진적 처방은 정치과잉과 강성노조 문제에 시달리는 우리의 현실과는 거리가 느껴진다.

차은영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