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이 치솟기만 하던 국제유가가 지난달 21일을 정점으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최근 이틀동안은 하루 2~3달러씩 급락세를 나타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선 유가의 거품붕괴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진 근본적인 수급불안이 해소되지 않아 하락폭이 제한적일 것이란 전망이 우세한 편이다.

◆배럴당 122달러로 하락

AP통신에 따르면 서부텍사스산원유(WTI) 7월물은 4일 뉴욕상품거래소에서 2.01달러 급락한 배럴당 122.30달러에 마감됐다.

장중 한때는 121.84달러까지 떨어졌다.

지난달 6일 이후 한 달여 만에 최저치다.

종가 기준으론 지난달 21일(133.17달러)과 비교해 약 11달러,장중가격 기준으로는 지난달 22일(135.09달러)에 비해 13달러 급락했다.

북해산 브렌트유 선물도 이날 런던석유거래소에서 2.48달러 하락한 122.10달러에 거래됐으며,중동산 두바이유 현물가격 역시 배럴당 3.24달러 내린 118.99달러에 장을 마쳤다.

지난주 석유제품 재고가 증가했다는 미국 에너지정보청(EIA) 발표가 유가 하락을 부추겼다.

EIA는 지난주 미국의 원유 재고는 전주에 비해 480만배럴 줄었지만,휘발유 재고는 290만배럴 늘었다고 밝혔다.

휘발유 재고 증가량은 에너지분석가들의 전망치보다 3배 이상 많은 것이다.

반면 휘발유 수요는 지난 한 달 새 1.4%가 줄었다.

시장 관계자들은 치솟는 유가 부담으로 미국의 석유 소비가 감소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날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인플레이션 우려를 언급하며 추가 금리 인하 중단을 시사한 이후 달러화 가치가 강세를 보인 것도 영향을 미쳤다.

이와 함께 미 금융감독당국이 원유시장에 대한 투기여부 조사를 벌이고 있는 점도 유가 약세에 일조했다.

월가의 일부 전문가들은 미 달러가 강세로 돌아서고 주요 원유소비국의 수요가 진정된다면 유가가 급격히 떨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아시아 유류가격 잇달아 인상

아시아 각국은 원유 보조금을 삭감,그동안 시장가격보다 싸게 공급해온 유류가격을 현실화하고 있다.

보조금으로 불어나는 재정 부담을 견디지 못해서다.

이에 따라 개발도상국의 원유 수요가 줄어들 것이란 분석도 적지 않다.

인도는 이날 휘발유와 디젤유 가격 등을 8~17% 인상했다.

말레이시아도 41%나 가격을 올렸다.

앞서 지난달 인도네시아는 석유제품 가격을 29%,스리랑카는 제품별로 14~47% 인상했다.

이날 말레이시아 증시의 KLSE지수는 물가급등과 경제성장률 둔화 우려로 2.36% 급락한 1223.56까지 밀렸다.

전문가들은 이번 인상조치로 말레이시아의 소비자물가는 연 3%에서 4~5%로 오르는 반면 경제성장률은 연 5.5% 이하로 둔화할 것으로 예상했다.

인도도 좌파가 집권한 일부 주에서 총파업을 선언하는 등 유가 인상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맥킨지컨설팅은 세계 각국의 석유가격 현실화로 하루 300만배럴의 운송용 연료유 수요가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유가의 단기약세에도 불구하고 고유가 추세는 쉽게 바뀌진 않을 것이란 전망이 여전히 우세한 편이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감산으로 인한 1970년대 두 차례의 석유파동과 달리 최근 유가 강세는 기본적으로 중국 인도 등 신흥국 성장에 따라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박성완 기자 ps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