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촌(富村)'을 규정하는 여러 요소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일정 규모 이상의 자산을 보유한 부자들이 한 군데 모여 산다는 점이다.

생활수준이나 사고방식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 살기를 원하는 부자들의 특성을 감안할 때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부촌이 형성되는 것은 전세계적으로 유사한 현상이다.

미국 드라마를 통해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캘리포니아주 베벌리 힐스,영국의 첼시,일본의 덴엔초후 등은 그 나라를 대표하는 부촌들이다.

1960년대 이후 단기간에 산업화를 이룬 우리나라의 경우 부촌이 시기별로 바뀌어 온 게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유행이 빠르게 바뀌는 한국의 특성상 대한민국 부촌의 뜨고 짐은 굉장히 다이내믹한 편"이라는 게 주택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뜨고 지는 부촌

한국에서 부촌의 형성은 크게 10년 정도를 주기로 이뤄지는 게 특징이다.

한국의 전통 부촌이라고 할 수 있는 강북의 성북동이나 한남동 등은 그 뿌리가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성 현대차 LG 등 대기업 그룹 오너들이 이곳에 터를 잡고 있다.

1970년대 들어선 강북의 동부이촌동과 여의도가 인기를 모았다.

이후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반에는 압구정동,그리고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는 대치·도곡동 일대가 부촌의 명성을 이어받았다.

이들 부촌은 △신흥 갑부들이 몰려드는 시기에 집값이 단기 급등하다가 △가격 급등 현상이 진정되고 △비슷한 수준의 부(富)를 축적한 사람들 중심으로 동네 구성원이 고착되는 형태로 발전해왔다.

1990년대 후반 막강한 교육 인프라를 바탕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부촌으로 떠오른 대치·도곡라인을 예로 들어 보자.이 동네의 경우 뜨기 시작한 초기에는 자녀교육을 위해 젊은 샐러리맨 부부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면서 급등하는 양상을 보였지만,200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집값이 부담스러운 수준에 이르게 되자 30∼40대 샐러리맨들의 신규 진입은 자연스럽게 중단됐다.

이후 수십억원대의 집값을 부담할 수 있는 순수한 부자들이 주로 이사해오면서 지금은 연 소득이 억대를 넘는 부자들 중심으로 주민구성 자체가 바뀌어 버린 상황이다.

1984년부터 대치동 미도아파트에 살고 있는 K모씨는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샐러리맨 등 중산층들도 이 동네에 많이 살았었는데,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에 집값 급등기를 거치면서 지금은 주민구성이 대기업 최고경영자(CEO),의사 등 전문직 등으로 완전히 바뀐 것 같다"고 전했다.

1970년대와 1980년대를 대표하는 부촌인 동부이촌동이나 압구정동도 부촌의 형성과정은 이와 비슷했다.

이들 부촌은 초기 형성 단계를 지나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어 더 이상 서울의 집값 상승을 견인하지 못하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부촌의 바통을 다른 동네에 넘겨주게 된다.

◆주거형태 선호도 시기 따라 달라져

주거와 관련된 부자들의 선호도는 지역뿐 아니라 주거 형태 부문에서도 지속적으로 변화돼 왔다.

한국의 부촌은 지역적으로는 성북·한남동→동부이촌동→압구정동→대치·도곡동 등으로 변해왔고,부자들이 선호하는 주택의 유형은 단독주택→아파트→주상복합으로 변해왔다.

집을 고를 때 고려하는 가치도 끊임없이 바뀌어왔다.

전통적인 부자들이 자신들만의 생활을 즐길 수 있는 프라이버시를 집을 고를 때의 최고 가치로 꼽았다면,그 이후에는 도시생활의 편의성이라든가,교육 인프라 등이 부자들이 동네를 선택하는 기준으로 자리 잡아왔다.

◆미래의 부촌은 어디인가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이르러 형성된 대치·도곡라인이 한국을 대표하는 부촌으로 부상한 이후 아직까지는 한국을 대표하는 부촌으로 꼽을 만한 뚜렷한 후발주자가 나타나지는 않은 상황이다.

청담동 일대 빌라촌이라든가,파크뷰로 대표되는 분당의 백궁·정자 주상복합타운,일산의 정발산 단독주택촌 등이 지역을 대표하는 부촌으로 자리매김했지만,규모 등의 측면에서 '최고'라는 타이틀을 붙이기에는 모자라 보이는 게 사실이다.

그렇다면 대치·도곡라인의 뒤를 잇는 차세대 부촌은 어느 곳이 될까.

차세대 주자가 어느 곳이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주택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전망이 극도로 엇갈리고 있다.

전문가들의 의견은 크게 네 가지 시나리오로 나뉜다.

첫째는 한국의 부촌이 강북에서 시작해 경부고속도로를 축으로 남하해왔다는 점을 들어 판교·분당라인이 새로운 부촌으로 부상할 것이라는 의견이다.

두 번째로는 올해부터 속속 입주에 들어가는 송파구 잠실동 일대 옛 주공아파트 재건축 아파트들이 부각될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세 번째로는 한강주변 압구정동과 양재천 주변 대치·도곡라인을 중심으로 강남의 명성이 계속 유지될 것이라는 의견이 있고 마지막으로는 국제업무지구 개발이 예정된 용산 일대로 부촌의 축이 넘어갈 것이라는 견해도 눈에 띈다.

강우신 기업은행 분당파크뷰지점 PB팀장은 "미래의 인기 주거유형이 무엇이 될지에 대해서도 전문가들 사이에 주상복합의 시대가 올 것이라는 쪽과 서울 근교의 전원주택들이 인기를 끌 것이라는 두 가지로 전망이 나뉜다"며 "어느 한 쪽 손을 들어주기가 쉽지 않은 문제"라고 말했다.

송종현 기자 scre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