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폴란드의 비드고슈츠시에 있는 오페라노바 극장.
국립발레단이 공연한 '로미오와 줄리엣'의 마지막 장면에서 줄리엣을 맡은 김주원이 로미오역의 정주영 위로 쓰러지는 순간 객석은 정적에 휩싸였다.
잠시 후 관객 중 한명이 박수를 치기 시작하자 공연장은 순식간에 환호와 갈채로 가득찼다.
곧이어 800석의 모든 관중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기립박수는 10여분 동안 계속됐다.
국립발레단의 폴란드 공연은 지난해 우츠 국제발레페스티벌에 이어 두번째.국립발레단과 친분을 쌓아온 세계적인 안무가 마츠 에크의 파트너인 솔레커 야첵이 제15회 비드고슈츠 오페라 페스티벌 초청을 주선했다.
이번 페스티벌을 주관하는 마츠에이 피가스 오페라노바 극장장은 "테크닉이 완벽하고 단원들의 움직임 등이 매우 정확하다"며 "세계적인 수준의 단체라고 들어 초청하게 됐다"고 말했다.
덕분에 지난해 6만달러였던 국립발레단의 개런티는 이번에 8만달러로 올랐다.
국립발레단의 공연 소식은 티켓 판매 1주일 만에 좌석이 매진될 정도로 좋은 반응을 얻었지만,우려도 적지 않았다.
오페라 페스티벌로 비드고슈츠 시민들의 문화 수준이 높은 데다 무대도 본래 규모의 70% 수준으로 줄어 무용수들의 동선을 다시 짜야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20시간이 넘는 이동 시간으로 무용수들의 피로가 누적된 것도 걱정거리였다.
발레는 클래식 음악회와 달리 장면마다 박수가 후하지만 1막 시작 뒤 머쿠쇼와 로미오가 등장할 때까지는 관객도 무용수도 다소 경직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김주원이 순백의 줄리엣으로 등장하면서 분위기는 달라졌다.
그의 몸짓이 끝날 때마다 박수는 쏟아졌고 로미오와 앙상블로 춤을 출 때는 여기저기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1막이 끝날 무렵에는 벌써 눈물을 보이는 관객들도 여럿 보였다.
2막에서 티볼트와 머쿠쇼의 결투가 이어지면서 공연장은 긴장감으로 가득찼다.
특히 머쿠쇼와 티볼트가 죽는 장면에서는 이를 맡은 이충훈과 이영철의 열연으로 객석 분위기가 더욱 뜨거워졌다.
이번에 선보인 '로미오와 줄리엣'은 러시아 볼쇼이 예술감독 출신인 유리 그리가로비치가 연출한 것으로 다른 버전과 달리 남성 무용수를 많이 활용해 동작에 힘과 에너지가 넘쳤다.
조연들의 역동적인 군무도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비드고슈츠에서 20㎞ 떨어진 곳에서 왔다는 올게냐 부죠라씨는 공연을 본 뒤 "가슴이 너무 아플 정도로 좋았다"며 "가장 아름다운 영화를 본 것 같다"고 말했다.
비드고슈츠(폴란드)=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