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들이 지난해 사상 최대 규모의 이익을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증권업 사상 처음으로 40개 증권사(외국계 14개사 제외)가 모두 순이익이 흑자를 내는 초유의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주가는 이 같은 실적 개선을 반영하지 못하고 지난 3월 이후 코스피지수보다 약세를 지속하고 있다.

은행과 제조업체들이 잇달아 증권사를 신설하고 나섬에 따라 앞으로 위탁매매 수수료 인하 등의 경쟁 격화로 이익이 지난해 수준에는 못 미칠 것이란 우려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수수료 인하 경쟁에 따른 피해가 작고 대형 투자은행(IB)으로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대형사와 중·소형사의 주가가 차별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하고 있다.

◆사상 최대 순이익 기록 속출

금융감독원이 29일 발표한 증권업계의 2007회계연도(2007년 4월~2008년 3월) 영업실적에 따르면 외국계 14개사를 포함한 국내 54개사 전체의 순이익은 4조4299억원으로 전년보다 70.3%나 증가했다.

이는 종전 최고치인 2005년의 3조7147억원보다 7152억원 많은 사상 최대 규모다.

특히 국내 40개 증권사는 전부 흑자를 냈다.

황건호 증권업협회장은 "국내 증권사가 모두 순이익을 낸 것은 증권업 55년 역사상 처음"이라며 "한국 자본시장의 발전상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 외국계 14개사도 국내 영업에 소극적인 ABN암로만 10억원의 적자를 냈을 뿐 나머지 13개사가 모두 흑자를 기록했다.

회사별로는 삼성 우리투자 한국투자 등 대형사들의 순이익 규모가 3000억원을 넘어서며 사상 최고 실적을 올렸다.

미래에셋증권도 2006년 1157억원이던 순이익이 2672억원으로 2배 이상 불어나며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대우 굿모닝신한 동양종금증권 등도 역대 최대 규모의 영업이익을 냈다.

이처럼 이익이 급증했지만 자기자본이익률(ROE)은 17.0%로 역대 최고치인 2005년의 20.9%보다 3.9%포인트 낮아졌다.

자기자본이 2006년 3월 말 19조6000억원에서 올 3월 말 29조8000억원으로 급증한 탓이다.

◆주가 전망은 '시계제로'

사상 최고 실적에도 불구하고 증권주는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증권업종 지수는 이날 2.02% 급락하는 등 이달 들어 줄곧 상대적인 약세를 보이고 있다.

4월 증권주 상승률은 3.60%로 코스피지수 상승률 6.31%보다 부진하다.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에 따른 경쟁 심화로 인해 업계가 점차 레드오션으로 변해가고 있는 점이 주가에 부담이 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김학주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신규 진입 완화로 인해 앞으로 2~3년은 치열한 생존 경쟁이 벌어지며 수익성이 잠식될 것이란 우려로 인해 증권주의 장기 전망이 밝지 않다"고 설명했다.

구철호 현대증권 연구원도 "경쟁 격화로 수익성 하락이 예상되는 데다 올 들어 주식에서 부동산으로 자금이 이동할 조짐"이라며 "올해는 ROE가 10% 안팎으로 크게 낮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투자의견도 '매수'에서 '중립'으로 하향 조정했다.

또 김희준 동부증권 연구원은 "최근 불거진 수수료 인하 경쟁은 전부가 손해보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단기적으로 주가에 부담이 될 것"으로 진단했다.

하지만 규제 완화 조치에 힘입어 대형 증권주들은 장기적으로 주가가 한 단계 도약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김희준 연구원은 "가격 경쟁은 단기 악재지만 장기적으로는 자본시장의 파이를 키우기 위한 성장통"이라고 진단했다.

정길원 대우증권 연구원도 "새 정부 출범 이후 규제 완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어 증권업의 성장 기반이 확충되고 있다"며 증권업 전망을 밝게 진단했다.

백광엽 기자 kecor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