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영화 '비스티 보이즈'의 시사회 현장. 배우 하정우가 무대에 오르자 객석 한쪽에 앉아 있던 여자들이 일제히 '꺅' 하고 비명을 질렀다.

하정우는 "가족(팬) 분들이 오셔서…"라며 쑥스러운 듯 웃었다.

여러 작품들을 거치면서 그에게는 늘 "신인이지만 연기 잘하는 배우"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그러나 연쇄살인범 역을 소름끼치게 연기한 '추격자'가 500만 관객을 끌어모으면서 그는 신인 꼬리표를 떼어버리고 본격적인 스타 자리로 올라섰다.

그러나 30일 개봉을 앞두고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응한 그는 '추격자'의 흥행 성공 전후로 자신에게 "달라진 건 없다"고 강조했다.

"이제 신인이 아니지 않느냐고요? 전 늘 그대로입니다.

제가 4년째 '충무로의 샛별'이란 소리를 듣고 있는데요(웃음). 최근에 전도연 누나와 영화 '멋진 하루'를 찍다 보니 3년 전 함께한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 때와 전혀 달라진 게 없더군요. 그래서 최고의 배우다 싶었어요."

'비스티 보이즈'는 환락의 세계에 몸을 담고 방황하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다.

그가 맡은 재현은 호스트바에서 호스트들을 각 룸에 분배하는 파트너 디렉터, 한마디로 '마담'이다.

"'추격자'의 지영민이 말수는 적지만 본심을 감추거나 숨기지 않는 캐릭터라면 '비스티 보이즈'의 재현은 끊임없이 말을 하지만 실은 본심을 숨기고 있는 인물이죠. 캐릭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의 향입니다.

나쁜 인간이나 좋은 인간이나 인간미를 느낄 수 있도록 관객을 설득해야 하죠. 재현은 나쁜 놈이지만 사람들이 잘 따르는 인물입니다.

그 매력은 유쾌함에서 나온다고 생각하고 연기했어요."

윤종빈 감독과는 '용서받지 못한 자' 이후 두 번째 만남이다.

이 영화가 칸 국제영화제에 초청받으면서 주목받은 윤 감독과 하정우는 이후 1년여간 룸메이트로 함께 지내기까지 한 가까운 사이다.

"의리라기보다는 믿음으로 출연했다"고 말하는 그에게 이 영화가 어떤 의미인지 묻자 "우리의 꿈 한 가지는 이룬 영화"라고 답했다. 우리란 물론 윤 감독과 하정우 자신이다.

"'용서받지 못한 자' 이후 다시 한 번 해보자고 다짐했습니다.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만 해도 이렇게 빨리 실현될지는 몰랐죠. 이 영화는 앞으로 서너 편을 더 할 수 있는 힘을 기른 계기가 됐어요."

언제부터 배우를 꿈꿨는지 묻자 그는 자신이 연기자의 길을 꿈꾸기 시작한 것이 "4살 때였는지 5살 때였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고 했다.

어렸을 적부터 아버지인 배우 김용건이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누비는 것을 지켜본 덕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이름이 그에게 따라다닐 새도 미처 없었다.

데뷔 때부터 다부진 연기로 충무로의 유망주라는 기대를 모았기 때문이다.

"19~20살 때 캐스팅되는 게 보통이지만 저는 언제부터 배우를 꿈꾼 건지 기억이 잘 안 나요.

그런 면에서 여유는 좀 더 있었겠죠. 의식이나 태도, 자세는 어렸을 때부터 잡혀 있었으니까요.

그래도 아버지하고 작품 얘기는 잘 하지 않아요.

그런 얘기야 매니저와 하는 거죠(웃음)."

'추격자'의 나홍진 감독은 그에 대해 "몸의 세포로 연기하는 배우"라고 평가했지만 하정우는 자신이 "완전 노력파"라고 말했다.

"캐릭터는 미세한 부분의 연기가 좌우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헤어스타일만 해도 재현은 직업상 신뢰감을 주는 클래식한 느낌이어야 한다고 생각해 바꿨죠. 걸음걸이도 중요한데 재현이라면 장난기가 묻어나는 걸음걸이가 좋겠다고 생각했죠. 리듬감이 포인트라고 생각하고 연기했어요."

'비스티 보이즈'의 장면을 하나씩 꼽으면서 열심히 설명하는 그는 확실히 성실해 보였다.

출연작을 떠올려 보면 그는 몇 년간 정말 열심히 뛰어 왔다.

2005년 '용서받지 못한 자' '프라하의 연인' '잠복근무', 2006년엔 '구미호 가족' '시간', 지난해엔 '히트' '숨' '두 번째 사랑'. 그리고 올해에만 주연작 세 편이 개봉한다.

"도연 누나가 '정우야, 넌 필모그래피가 나보다 길어'라고 하던데요(웃음). 굳이 다작을 하려고 한 건 아닙니다. 충분히 할 수 있는 만큼 하려는 거였죠. 이것 다음엔 저걸 해야지 생각하기보단 1년을 보고 계획하는 편이에요. '추격자' 촬영이 늦어져 '멋진 하루' 촬영과 바로 이어지게 된 것뿐입니다."

배우로서 자신의 장단점은 뭐라고 생각하는지 묻자 그는 아주 잠깐 생각해 보더니 "너무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것"이라며 "열정적이라는 것과 무모하다는 게 바로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답했다.

그는 '비스티 보이즈' 홍보 활동만 끝나면 "이제 정말 쉬려고 한다"고 말했지만 차기작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참 부지런한 배우다.

"앞으로는 경험을 좀 더 쌓고 싶어요. 많은 사람을 만나고요. 취미도 더 만들고 싶고. 물론 결혼도 언젠가는 해야겠죠?(웃음)"

(서울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cheror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