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중국의 무술변법(戊戌變法) 개혁운동 110주년이 되는 해다.

서구 기술문명의 흉내만으로 체제유지를 꾀했던 양무운동이 청일전쟁(1894년) 패배로 파산한 뒤 왕조체제 변혁을 위한 아래로부터의 운동이 본격화된다.

제도와 정신을 바꿔서 열강의 침탈을 극복하자는 개혁운동을 주도한 것은 사제지간인 강유위와 양계초,그리고 광서황제였다.

그들의 무술년(1898) 국정개혁은 서태후를 정점으로 한 보수파의 궁정쿠데타로 100일 만에 좌절된다.

삼일천하로 끝난 조선 갑신개혁(1884)의 김옥균이 그랬던 것처럼 양계초 역시 백일유신(百日維新) 실패 직후 일본으로 망명했다.

그러나 김옥균과 달리 양계초는 신해혁명 뒤 귀국해 1929년 쉰여섯 나이에 병사할 때까지 정치와 학문분야에서 매우 활동적이고 실천적인 삶을 살았다.

그의 대표 정론인 '신민설(新民說)' 등을 담은 '음빙실문집'은 한용운을 비롯한 한국의 개혁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으며,그 위험성을 꺼린 조선총독부가 금서목록에 꼽을 정도였다.

'양계초'(서강 지음,이주노ㆍ김은희 옮김,이끌리오)는 개혁사상가이자 학자였던 그의 일생을 과도(過渡)와 다변(多變)으로 특징짓는다.

왕조의 위기에서 개혁-혁명-반혁명으로 이어지는 시대가 그랬고,개혁파에서 혁명파로,다시 반혁명 개량파로 유턴하며 시대와 동떨어져가는 영욕에 찬 그의 일생은 '변화많음' 그 자체였다.

제법 두툼한 분량이나 세세한 부분까지 다큐멘터리처럼 이야기해주므로 중국 근대의 사건과 흐름을 아는 데 도움이 된다.

"내가 전에 허물이 있을 적에 그대는 날 바로잡아주었고,내가 어려움에 빠졌을 대 그대는 날 도와주었으며…." 그가 죽기 5년 전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를 기리며 쓴 도망시(悼亡詩)는 지금도 남성들의 심금을 울리는 명문으로 통한다.

저자 서강(徐剛)은 베이징대 중문과를 졸업한 문인.

718쪽,2만9800원.

우종근 편집위원 rgbac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