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대야소로 총선이 끝난 하루 뒤인 10일 오전 9시 경기도 양주의 북부상공회의소 연수원 대회의실.지역 중소 영세업체 대표 150여명이 모였다.

이들이 공장 대신 이곳으로 출근한 이유는 거래은행인 기업은행 윤용로 행장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의례적인 현장 방문일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인사말이 끝나기 무섭게 기업인들의 가시돋친 발언이 쏟아졌다.

18년간 조그만 섬유업체를 경영해 왔다는 예성섬유 김춘성 대표는 "최근 공장이 산업단지로 이전하면서 돈을 구하지 못해 설움을 겪었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그동안 한 번도 신용을 잃지 않았는데도 공장을 옮기면서 일시적으로 매출이 줄었다는 이유만으로 은행에서 신용등급을 떨어뜨렸다.

재무제표로만 기업신용을 평가하느냐.본점에서 탁상행정만 하지 말라"고 질타했다.

자동차 부품업체를 경영한다는 동남테크의 이기봉 사장도 "장치산업의 특성상 수주를 받은 뒤 한참 뒤에 매출이 발생하는데 설비를 도입하는 기간 동안 마음 고생이 심했다"고 거들었다.

영세 건설업체들의 불만도 쏟아졌다.

성산토건의 조환구 대표는 "지난해 말부터 건설업체 어음을 일절 받아주지 않는다.본점에서 해주지 말라고 공문이 내려왔다고 하더라"며 포문을 열었다.

곧이어 "은행장 얼굴을 직접 보기는 기업 경영 31년 만에 처음"이라고 뼈있는 말로 자신을 소개한 한신단열의 한희준 사장이 입을 뗐다.

그는 "원자재 가격이 올랐지만 판매 단가는 올리지 못하고 있다.이런 상황에서 은행마저 금리를 올리고 있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은행에 대한 하소연인지 정부에 대한 불만인지 모를 듯한 얘기들도 쏟아졌다.

"예전에는 월 300만원 쓰던 기름값이 1000만원 넘게 나간다","엔화 대출은 왜 안 되냐.기업들이 이자라도 싸게 해서 돈을 쓰려면 엔화 대출을 늘려야 하는 것 아니냐"는 등 끊임없이 이어졌다.

이날 대화는 예정 시간을 훌쩍 넘기면서 2시간 넘게 이어졌다.

총선이 끝나면서 정부가 경기 부양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적극적으로 기업 대출을 늘리도록 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무색한 자리였다.

기업인들의 표정은 한마디로 정부와 은행의 립서비스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윤 행장은 대화 중간 중간 "은행이 다소 손해를 보더라도 올해 기업 대출을 늘리겠다.

경영이 건실한 업체는 선별적으로 우선 조치하겠다"며 구슬땀을 흘리며 참석자를 달랬다.

양주=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