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마리 위르티제 신임 주한 유럽연합상공회의소(EUCCK) 회장을 만난 것은 지난 2일이었다.

그를 만나기 위해 처음 찾은 곳은 서울 봉래동 르노삼성자동차 사장실이었다.

인터뷰 직전 광화문 교보빌딩의 주한 EU상의 회장실로 자리를 옮기면 안 되겠느냐고 그가 조심스레 물어왔다.

르노삼성이 아닌 유럽 기업을 대표하는 EU 상의 회장 자격으로 인터뷰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자리를 옮겨 인터뷰를 가졌다.

인터뷰는 약속받은 시간보다 30분이나 많은 1시간30분 동안 이어졌다.

그는 한국 정부에 투명성과 개방을 주문했지만,새 정부에 거는 기대도 컸다.

―회장 취임을 축하한다. 중량감 있는 인사가 회장을 맡았다는 평가가 많다.

"지금까지 전임 회장들도 잘해 주셨다.

가시적인 성과도 거뒀고,외국인 직접투자 유치 행사도 많이 가졌다.

상공회의소 회장은 회원사들을 대표하는 대변인이라고 생각한다.

유럽 기업들의 기대와 요구사항을 가감없이 한국 정부에 전달하려고 한다.

모든 회원사들이 적극적인 활동을 벌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볼 작정이다."

―회장에 취임하면서 가장 먼저 생각한 부분은.

"올해는 유럽연합(EU)과 한국에 매우 중요한 시기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하루빨리 타결되기를 희망한다.

협상 타결에 EU 상의 회장으로서 일정 부분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한국 정부에 협정과 관련한 EU 현지의 분위기를 잘 전달하고 이해시키는 역할을 했으면 한다.

외국인 투자를 늘리는 게 이명박 정부가 (한국에 진출하고 있는) 우리에게 원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EU가 세계 경제의 3대 축인데도 한국에서는 다소 과소 평가받고 있다. 미국이나 중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중이 낮게 인식되는 경향도 있다. 어떻게 보나.

"미국은 한국과 정치적으로 특수관계다.

일본과 중국은 지리적으로 가깝다.

EU가 한국에서 상대적으로 작게 느껴지는 이유다.

EU가 한국 신문의 1면을 자주 장식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에 기여하는 분야를 언급한다면.

"한국의 대외 교역량을 따져보면 중국이 가장 많고 그 다음이 EU다.

유럽이 그만큼 한국의 경제발전에 많이 기여했다는 방증이다.

유럽은 배기가스 등 환경적인 측면이나 각종 공사 등 안전성 면에서도 한국이 더 높은 수준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해오고 있다.

복지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영향을 많이 주고 있다."

―한국 정부는 기업환경 개선 작업을 계속해 벌여오고 있다. 한국의 투자 여건을 평가한다면.

"EU 상의 회장 취임 이후 회원사들로부터 많은 얘기를 들었다.

규제가 너무 많다는 불만이 주류였다.

승인이나 등록 절차가 복잡하고 까다로운 게 가장 큰 문제로 꼽혔다.

이런 것들은 뚜렷하게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 비관세 장벽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최근 들어 많이 달라지고 있다는 느낌을 갖고 있다.

취임 직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부분을 지적했더니,한국 정부가 '즉시 해결하겠다'고 답변해 왔다.

일부는 벌써 해결됐고 상당 부분에 대해서도 검토 중이라는 의견을 보내왔다.

이명박 정부의 빠른 대응과 해결 의지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한국 정부에 조언한다면.

"프랑스를 비롯해 유럽에서는 한국의 이미지가 여전히 '불투명'한 편이다.

시장을 더 개방하고,투명성을 높이려는 노력을 더 기울여야 한다.

예를 들어 론스타 문제만 해도 그렇다.

외국인들 눈에는 투명하지 않게 처리된 것처럼 보였다.

현안을 투명하게 풀어 나가는 나라라는 이미지를 심어주는 게 중요하다.

한·EU 간 FTA를 타결하면 홍보 효과가 클 것이다.

한국에 희망적인 얘기를 덧붙이자면 중국이나 일본에서 일하는 동료들과 얘기하면 한국에서 일하고 생활하는 게 더 좋다는 평가를 자주 듣곤 한다."

―한국의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방안에 대한 의견을 말해 달라.MB 정부는 국민소득 4만달러 시대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갈 길이 먼 상황이다.

"한국의 최대 장점은 역동성이다.

매일 피부로 느끼고 있다.

일처리도 빠르고 개인 능력도 탁월하다.

중국이나 일본에서 일하는 동료들이 한국에 더 강한 매력을 느끼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다만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가 너무 큰 것은 문제가 아닌가 싶다.

서비스산업도 더 육성해야 한다.

특히 글로벌 시장에서 더욱 강조되고 있는 환경·안전 등의 부문에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유럽이 좋은 모범사례가 될 수 있다."

―최고경영자를 맡고 있는 르노삼성으로 논의를 돌려보자.르노삼성은 7년 연속 무분규다. 비결이 뭔가.

"투명성과 커뮤니케이션이다.

노사가 자주 만나 적극적으로 대화한다.

경영진은 회사 상황과 현안을 솔직하게 공개한다.

근무 여건도 지속적으로 얘기를 듣고 개선한다.

근로자들이 노조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게 중요하다."

―최근 SM5 리콜 문제로 좀 시끄러웠는데.

"고객 불안을 야기한 데 대해 정중히 사과드린다.

SM5 전부가 아니라 액화석유가스(LPG) 모델에서만 문제가 발생했다.

고객을 완전히 만족시킬 해결책을 찾다가 리콜을 택했다.

리콜은 지극히 정상적인 업무의 일부분이다."

―한복을 입고 고사 지내는 모습을 봤다.

"르노그룹의 글로벌 전략 핵심은 현지화다.

현지화는 내 경영철학이기도 하다.

르노삼성은 엔지니어링,디자인,설계부문 등을 모두 한국에 두고 있다.

한복 입고 고사를 못 지낼 이유가 없다."

―삼성 브랜드 사용 계약이 2010년 7월로 끝나는데.

"카를로스 곤 르노-닛산 회장이 지난 2월 말 방한했을 때 삼성그룹 관계자들을 만나 이 문제를 협의했다.

의견 접근을 본 것으로 알고 있다.

삼성 역시 르노삼성의 2대주주(19.9%)인 만큼 이해관계가 적지 않다.

삼성 브랜드를 계속 쓰기를 강력히 희망한다.

협상이 결렬되더라도 바뀌는 것은 많지 않다.

고객들에겐 아무 영향이 없다.

똑같은 품질과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다."

―국내에서는 현대자동차가 최대 경쟁자인데.

"현대차의 프리미엄 세단인 제네시스를 타봤다.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현대차는 한국 시장에서는 최대 지배자이고,글로벌 시장에서도 핵심 기업으로 부상하고 있다.

양적으로 급속히 팽창 중이다.

하지만 세계 시장에는 제네시스처럼 좋은 차들이 많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글=조재길 기자/사진=양윤모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