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 밸런타인데이.24세의 젊은 엄마는 결혼 2주년 기념일을 며칠 앞두고 남편과 교회에 갔다.

그는 성가대를 지휘하기 위해 안으로 들어가고 남편은 차안에서 5개월 된 아들을 재우고 있었다.

그 때 갑자기 10대 강도들이 나타났고 남편은 그들이 쏜 총에 목숨을 잃었다.

아들은 뒷골목의 지저분한 쓰레기통 옆에 버려져 울고 있었다.

소프라노 유현아씨(39)는 그런 슬픔을 딛고 성악을 시작했다.

당시 미국 텍사스 주립대에서 분자 생물학을 공부하고 있었지만 남편을 잃은 충격에 너무 힘들어하자 피아니스트인 그의 언니가 다시 노래를 해볼 것을 권유했다.

성악을 시작하기엔 늦은 나이였지만 그는 25세 때 피바디 음대에 진학해 3년 만에 학부를 마쳤고 네덜란드 콩쿠르 입상(1998년),나움버그 국제 콩쿠르 우승(1999년) 등으로 유명해졌다.

지난해 1월엔 한국인 성악가로는 처음으로 EMI 음반 레이블을 통해 '바흐 칸타타와 모차르트 아리아' 앨범을 발매했다.

오는 19일 LG아트센터에서 열리는 국내 첫 리사이틀을 앞두고 미국 볼티모어에 있는 유씨와 전화 인터뷰를 가졌다.

성악 실력보다 아픈 사연이 더 많이 거론되는 것 같다고 운을 떼자,그는 "처음엔 그런 언론의 관심이 너무 힘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멘토'인 윌리엄 브로디 존스홉킨스대 총장의 위로를 받은 뒤부터 마음가짐을 달리했다고 덧붙였다.

"제가 아프고 어려웠을 때 하나님께 받은 위로의 선물이 음악이었어요.

저의 그런 경험을 사람들과 나누고,저처럼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희망을 줘야 한다는 총장님의 말씀을 듣고 사람들의 관심을 담담히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특히 바흐의 음악은 그에게 큰 위로가 됐다.

목사인 아버지의 영향도 있었지만 가장 신(神)적인 음악을 만들었다는 바흐의 작품은 하나님을 가까이 느낄 수 있게 해준 매개였다.

"바흐의 음악은 순수하면서도 성스러워요.

하지만 그런 음악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가장 인간적인 번민들을 해봤기 때문이겠죠."

아직도 그때의 상처가 완전히 아물지는 않았다.

남편의 15주기였던 지난 밸런타인데이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시간이 지났지만 아픈 기억은 너무나 생생했다.

그러나 울음을 억지로 참지는 않는다.

무대 위에서 울지 않기 위해서다.

이 때문인지 비평가들은 서양의 오페라를 부르는 중에도 그의 목소리에서 동양적 '한'이 느껴진다고 말한다.

그는 기교를 부릴 여지가 많은 리릭소프라노이지만 목소리의 테크닉보다는 몸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무게감 덕분에 더 높게 평가받고 있다.

유씨는 "아마도 아직까지 내가 음악을 통해 치료받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한국 공연에서 부를 곡들을 직접 정했다.

슈베르트와 멘델스존 등 국내 관객에게 친숙한 작곡가들의 숨겨진 명곡들을 부를 예정이다.

퍼셀의 '노래하는 새들이여',멘델스존의 '노래의 날개 위에'와 '연인의 편지',슈베르트의 '보라,이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슈트라우스의 '담쟁이 넝쿨' 등이 포함됐다.

서울 공연에 이어 22일 김해 문화의전당,25일 울산 현대예술관 공연도 예정돼 있다.

3만~6만원.(02)2005-0114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