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대학 강의지 뭡니까."

27일 오전 9시반.한국경영자총협회가 이영희 노동부 장관을 초청해 조선호텔에서 가진 조찬포럼이 끝나자 한 참석자가 허탈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포럼 주제는 '새 정부의 노동정책 운용방향'.예상보다 많은 120여명의 기업체 관계자들이 참석해 조찬장을 가득 채웠다.

참석자들은 "알리안츠생명 파업사태를 비롯해 최저임금제나 복수노조 설립 같은 산적한 노동 현안에 대해 장관의 입장을 듣고 싶어 왔다"고 입을 모았다.

기대는 빗나갔다.

단상에 오른 이 장관은 "오늘은 큰 맥락에 대해 말씀드리겠다"고 말문을 열었다.

별도로 준비한 두 장의 자료도 돌렸다.

자료엔 '비즈니스 프렌들리의 진의,동반자적 관계(파트너십)란 어떤 것인가,종업원은 누구인가,노동조합은 누구인가'라는 자구들이 띄엄띄엄 적혀 있었다.

이 장관은 겸연쩍은지 "제가 아직 교수 습성이 강해서…"라며 "요즘 학생들은 교수들이 이렇게 강의 핵심어를 적어줘야 한다"고 부연 설명까지 덧붙였다.

이 장관은 이어 선진화된 노사관계를 위한 바람직한 종업원과 사용자의 정의에 대해 설명해 나갔다.

50여분에 걸친 강연은 그런 식으로 계속됐다.

원론 수준의 강연 탓이었던지 질의 응답 순서에선 하소연성 질문들이 쏟아졌다.

한 참석자는 "최저임금제가 시행된 2000년 이후 7년간 12%씩 상승해 힘들다.

최저임금제 조정을 검토해 달라"고 했다.

이에 대해 이 장관은 "다른 일정이 있어 더 이상 대답하기 힘들다"며 넘어갔다.

시계는 8시56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다른 질문이 튀어나왔다.

"2009년까지 허용이 유예돼 있는 복수노조와 관련해 기업들의 준비가 필요한데 견해를 말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 장관은 시계를 다시 봤다.

8시59분.그는 "애로사항이나 문제에 대해서는 당국이 항상 귀를 기울이고 있기 때문에 파악하고 있다"며 핵심을 비켜갔다.

그는 이어 "노사가 함께 풀어나가야 한다"는 원칙론을 언급하는 데 8분을 쓰고는 자리를 떴다.

이날 포럼 참석자들이 건진 것은 띄엄띄엄 핵심어가 씌어진 두 장의 자료뿐이었다.

김현예 산업부 기자 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