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밤 도쿄역앞 니혼바시 건너편에 있는 일본은행 현관.후쿠이 도시히코 일본은행 총재가 5년 임기를 마치고 직원들의 환송을 받으며 자동차에 올랐다.

대과없이 마지막으로 떠나는 후쿠이 총재를 배웅하는 자리이지만 직원들 표정은 어두웠다.

그가 떠난 자리에 앉을 후임 총재가 아직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 총재는 20일부터 공식적으로 '공석'이다.

지난주부터 일본 정부가 잇따라 총재 후보 2명을 지명했지만 모두 참의원(상원격)에서 야당 반대로 무산됐다.

일본은행 총재가 빈자리가 되기는 2차대전 이후 처음이다.

일본은행 총재 공백 사태의 책임은 누가 뭐래도 '정치'에 있다.

일차적으론 정부ㆍ여당의 책임이다.

야당이 반대할 걸 뻔히 알면서도 재무성 출신 후보를 두명이나 잇따라 지명했다.

야당은 일찌감치부터 '금융과 재정 정책의 분리'를 명분으로 재무성 출신은 "절대 안된다"고 못박은 터였다.

그런데도 후쿠다 야스오 총리는 밀어 붙였다.

'기세 싸움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심산과,야당의 반대로 일은 총재 공석 사태가 발생하면 책임을 야당쪽으로 돌릴 수 있다는 속셈이었다.

민주당 등 야당이라고 잘 한 건 없다.

야당의 잇딴 임명안 반대를 순수하게 보는 시각은 많지 않다.

다케나카 헤이조 게이오대 교수는 "중앙은행 총재는 재무성 출신 여부보다는 필요한 자질을 충분히 갖췄느냐를 따지는 게 중요하다"며 "야당이 정부안을 계속 반대해 부결시킨 건 후쿠다 정권 흔들기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결국 총재 공백 사태는 정치력도 없이 꼼수만 부린 정부,여당과 정권투쟁에만 매달리는 야당 등 3류 정치권의 합작품인 셈이다.

가뜩이나 글로벌 신용경색이 몰아치고 있는 상황서 중앙은행 총재 공백을 맞은 도쿄의 금융시장은 침울하다.

한 증권사 이코노미스트는 "여야 합의로 중앙은행 총재 하나 못 뽑는 일본의 정치현실이 창피하다"며 "외국인 투자자들이 이런 나라에 과연 투자를 하겠느냐"고 탄식했다.

시장은 총재 공석 자체가 아니라 총재 공백을 초래한 일본의 정치에 더 비관하고 있다.

한국도 타산지석으로 삼을만한 대목이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