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경력 BBC 특파원이 본 중국의 힘과 거품

상하이에서 근무할 때 매년 여름이면 어김없이 찾아와 중국 이야기를 나누던 프린스턴대 교수가 있었다.

미국인이면서도 유창한 중국어 실력에다 중국의 산업현장을 속속들이 꿰뚫고 있어 혀를 내둘러야 했다.

중국 개혁개방 30년의 변화를 집대성한 '선부론(先富論)'(던컨 휴잇 지음,김민주.송희령 옮김,랜덤하우스)을 접하고 영국인 저자의 내공과 혜안에 또 한번 감탄사가 나왔다.

얼핏 제목만 보면 '지난 얘기겠거니' 하기 십상이다.

선부론은 덩샤오핑(鄧小平)이 30년 전에 내놓은 개혁개방의 구호인 까닭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바로 사라진다.

저자의 경력부터 남다르다.

1986년 중국 유학길에 오른 후 베이징과 상하이에서 BBC 특파원을 거치면서 지금까지 줄곧 중국에서 살았다.

그 사이 상하이 출신의 중국인 부인도 맞이했다.

그는 20년에 걸친 중국 경험을 바탕으로 유럽 국가들이 2차 대전 이후 40년 동안 한 일을 중국은 어떻게 10년 안에 할 수 있었는지를 일화 형식으로 펼쳐 보인다.

많은 서적들이 중국의 변화를 정치와 경제로 풀어가지만 이 책은 철저하게 중국인들의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중국판 '체험 삶의 현장'이라 할 수 있다.

변화의 밑바닥을 저인망처럼 샅샅이 훑어간다.

슈퍼파워 중국을 이끄는 기업인들의 성공 스토리와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몰려드는 농민공(農民工)의 애환,과거와 미래의 충돌 속에 새로운 것이면 무엇이든 받아들이는 놀라운 흡수력,시민사회와 10대라는 새로운 계층과 세대의 등장,서로 다른 시스템들이 공존하면서 야기되는 갈등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살아 꿈틀거리는 현장의 기록들이다.

중국문제에 관한 한 우리는 쉽게 낫지 않는 만성질환을 앓고 있다.

중국을 보는 시각이 언제나 양극단을 오가는 것이다.

차이나 드림과 차이나 쇼크가 어지럽게 뒤섞여 방향을 잃은 듯한 모습이다.

우산 장사와 짚신 장사를 둔 어머니 마음처럼 중국이 잘 돼도 불안하고 못 돼도 걱정이다.

이 책은 중국을 함부로 재단하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그려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저자는 섣부른 미래 예측을 하기보다는 '줄타기'라는 상징적인 화두를 던지며 책을 마무리한다.

중국은 지속가능한 성장 유지노력과 성장통의 끔찍한 후유증 치유 노력 사이에서 절묘한 줄타기 실력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600쪽이 넘는 두께 때문에 묵직한 종합 월간지 같지만 한줄 한줄 읽다보면 마치 TV의 인간 다큐멘터리를 보듯 편안하고 부담이 없다.

책을 좀 더 재미있게 읽고자 한다면 오버랩(overlap) 독서를 권한다.

변화의 장면과 장면들을 겹쳐보는 것이다.

공부를 잘 하려면 복습과 예습만한 것이 없다고 했다.

'선부론'은 중국의 과거 30년을 복습하고 미래 30년을 예습하는 지침서로 손색이 없다.

644쪽,1만9800원.

박한진 KOTRA 중국직무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