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도덕한 기업사냥꾼'인가,'소액주주들의 로빈후드'인가.

'월가의 상어'로 불리며 기업에 대한 무차별적인 적대적 M&A(인수ㆍ합병) 시도로 악명높은 칼 아이칸(72)이 자신의 투자 철학에 대해 입을 열었다.

아이칸은 10일 미국 CBS의 간판 시사프로그램 '60분(60 Minutes)'에 출연해 "나의 투자 목표는 공격적인 투자로 저평가된 기업의 가치를 높이면서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것"이라며 "M&A 위협을 통해 기업 경영진을 자극하면서 결과적으로 경쟁력 약화로 위기에 빠진 미국 기업을 구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내가 투자했던 회사 중에 주가가 떨어진 곳은 거의 없다"며 "많은 소액주주들에게 커다란 이득을 안겨주고 있지만 내 스스로 나서서 '이봐요,내가 당신들을 위해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 봐요'라고 떠벌리고 싶지는 않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아이칸은 1980년대 TWA항공사와 대형 식품업체 RJR나비스코 등 미국 대기업들에 대한 적대적 M&A를 잇따라 성사시키며 일약 '기업사냥꾼'으로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1990년대 IT(정보기술) 버블 시기에 잠시 잠잠했던 아이칸은 2000년 GM(제너럴모터스) 인수를 시도했고,재작년엔 한국 KT&G를 위협해 1500억원의 이득을 챙기는 등 건재함을 과시했다.

지난 1월엔 자신이 최대주주인 미들웨어업체 BEA시스템스가 세계적인 기업용 소프트웨어 오라클에 매각되면서 투자 5개월만에 5억달러를 벌어들이는 대박을 터뜨리기도 했다.

하지만 2006년 12월 회사 분할과 자사주매입을 요구하며 나섰던 세계 최대 미디어그룹 타임워너에 대한 M&A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면서 자신의 명성에 흠집을 냈다.

그러나 아이칸은 타임워너에 대한 CBS측 질문에 "물론 타임워너의 경우 내 실수라고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난 타임워너 주식 거래를 통해 3억달러를 건졌다.

과연 이것을 실패라고 말할 수 있을까"라고 오히려 되묻는 여유를 나타냈다.

투자회사 아이칸엔터프라이즈의 CEO(최고경영자)를 맡고 있는 아이칸은 현재 아들 브레트와 애널리스트 40여명과 함께 사모 헤지펀드 '아이칸파트너스'를 이끌고 있다.

80억달러 규모로 운용되는 이 펀드는 연평균 수익률이 30%에 이르고 있다.

자신의 사무실로 향하는 복도를 온통 전쟁과 관련된 그림으로 채우고 있는 아이칸은 "나는 위험한 도박을 매우 즐기는 편"이라고 전했다.

그는 "프린스턴대 철학과 재학 시절 등록금의 절반을 포커게임에서 딴 돈으로 충당할 정도로 게임을 잘 했었다"고 회상했다.

아이칸은 최근 약세장 속에서도 여전히 큰 수익을 얻을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에 "남들이 안된다고 말하는 시장이 내게는 오히려 기회의 장"이라며 "최근 하락장속에서 저평가된 기업들을 주워 모으는 일은 매우 즐겁다"고 말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