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추어 감독인데 '변신'이라고까지 말할 것 있나요.

그래도 관객들이 제 작품을 보고 단편 영화의 매력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면 좋겠어요."

2001년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고 울부짖던 순수한 청년,2003년 '올드보이'에서 한 남자를 15년간 감금한 복수의 화신,지난해 '황진이'에서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순정파….

폭넓은 연기력을 보여줬던 배우 유지태(32)가 영화감독으로 변신했다.

그가 만든 24분짜리 단편 '나도 모르게'가 오는 20일부터 일주일간 광화문 스폰지하우스에서 관객들을 맞는다.

'나도 모르게'는 중년 남자가 20년 전 첫사랑을 잊지 못하고 힘들어한다는 내용.과거와 현재,현실과 상상을 오가는 창의적인 연출력이 돋보인다.

운전 중인 중년 남자의 옆자리에 나타난 첫사랑이 '나도 모르겠어.왜 오빠처럼 이기적인 사람에게 집착하는지' '이제는 되돌릴 수 없어'라고 속삭이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이 작품은 오는 6월 열리는 일본 도쿄단편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했다.

극장에 내걸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나도 모르게'가 그의 첫 작품은 아니다.

부산아시아단편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은 '자전거 소년'(2003년)과 후지필름상을 받은 '장님은 무슨 꿈을 꿀까요'(2005년)를 먼저 선보였다.

"단편 영화에서는 장편에서 할 수 없는 것들을 시도할 수 있습니다.

그 시도는 곧 영화의 다양성으로 이어집니다.

'나도 모르게'도 장편으로 만들었다면 첫사랑에 얽힌 사연을 구구절절히 설명해야 했을 거예요."

그는 단편 영화가 좀 더 관심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비슷비슷한 상업 영화들만 나오면 관객들이 외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편 영화를 제작하는 데에는 '너무나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나도 모르게'는 '자전거 소년' 등 전작 두 편의 판권을 케이블에 판 돈과 후지필름상의 부상으로 받은 필름을 갖고 만들었어요.

제가 이름이 좀 알려진 배우가 아니었다면 이 작품이 극장에 걸리는 것도 불가능했겠죠."

그는 앞으로도 연기와 연출을 병행할 계획이다.

배우로서는 오는 17일 촬영에 들어가는 류장하 감독의 '순정만화'에서 주인공인 30대 동사무소 직원역으로 열연한다.

감독으로서는 차기작인 성장 영화의 시나리오 구상을 이미 마쳤다.

"나중에 늙어서 '지지리 궁상'이라는 말만 안 들었으면 좋겠어요.

무언가에 집착하면 보수적이 되고 사람들과 소통도 할 수 없게 되는데 그게 바로 궁상 아닌가요.

물론 제가 집착하는 것은 영화죠(웃음)."

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