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이라면 TV에서 성남기업의 '작품'을 한번쯤은 봤을 것입니다.

청와대 본관과 영빈관,기자실이 있는 춘추관에 달려 있는 문들은 다 우리가 만들었거든요.

" 김강배 성남기업 회장(68)은 TV 뉴스 등에서 청와대 내부가 비칠 때마다 대통령 모습보다는 그 뒤에 있는 문이나 창문 틀에 먼저 눈이 간다.

혹여나 흠이 났거나 색이 달라진 부분이 있는지 주의깊게 살펴보는 것이다.

성남기업은 1989년부터 1991년까지 청와대 신축 공사에서 목창호 시공을 맡았다.

김 회장은 "솔직히 이익은 별로 남지 않았지만 후세에 남길 작품을 만든다는 각오로 만들었다"며 "전 직원이 여름 휴가도 반납하며 모든 역량을 쏟아부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1991년 청와대 완공식에서 당시 노태우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받은 감사패를 자랑스럽게 내민다.감사패에는 '빼어난 기술과 탁월한 기량을 발휘해 역사에 남을 훌륭한 건물을 완성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적혀 있다.그는 "청와대가 경무대로 불리던 이승만 대통령 시절 개축 공사에도 선친(故 김태옥 창업주)께서 목공일을 맡으셨다"며 "청와대 목창호 공사는 대대로 우리 집안이 담당해온 셈"이라고 설명했다.인천 서구 석남동 목재가공단지에 자리잡은 약 1만㎡ 면적의 성남기업 본사와 목재창호 제1공장.나무 냄새가 짙게 배인 공장 내부로 들어서면 이 회사의 역사와 전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문구가 눈에 띈다.'SINCE 1935.'

성남기업은 73년째 나무로 만든 문과 창문 창문틀 등 목재 창호를 만들고 있다.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목창호 전문 기업이다.김 회장의 부친인 고 김태옥 대표(1982년 타계)가 1935년 서울 이태원 집 마당에서 목수 4명과 함께 시작한 '성남목공'은 현재 직원 250명에 90여개 협력사를 거느린 동종 업계 1위 기업인 '성남기업'으로 발전했다.

지난해 이 회사의 목창호가 들어간 아파트는 2만3000가구.매출도 회사 설립 이후 가장 많은 380억원을 기록했다.김 회장은 "성남기업만큼 오래된 목창호 회사도 없고 한 부문에서 이만큼의 매출을 올리는 데도 없다"고 한다.김 회장은 회사의 장수 비결로 '선대로부터 이어지는 대목(大木.대형 건축물을 잘 짓는 목수)의 장인정신과 기술'을 꼽는다.창업주인 고 김태옥 대표는 서울 일대에서 유명한 목공인이었다.창업 초기에는 솜씨 좋은 동료들과 함께 한옥집에 들어가는 문인 완자문(문짝 살대가 '卍'자 모양으로 된 문)을 주로 만들었다.김 회장은 "살대를 가늘게 만들어 짜맞추는 완자문은 고도의 숙련을 필요로 한다"며 "완자문을 잘 만들기로 소문나서 언제나 일감이 넘쳐났다"고 전했다.

김 회장은 1966년 한양대 건축학과를 졸업하자마자 회사를 맡았다.그는 "건설회사에 들어가 경험을 쌓고 싶었는데 당시 아버지의 건강이 나빠져서 일찍 가업을 잇게 됐다"고 회고했다.

성남기업이 목공소 수준에서 '기업'으로 성장하는 과정에 현대건설을 빼놓을 수 없다.한국전쟁이 끝난 직후인 1953년 미군 극동공병단(FED)이 발주하는 시설 공사에 참여하면서 현대건설과 인연을 맺었다.FED 공사에서 '성남 목공'의 솜씨를 눈여겨본 고 정주영 회장은 현대건설의 목창호 관련 공사를 대부분 성남기업에 맡겼다.현대조선의 첫 수주작인 그리스 대형 선박에 들어가는 목재 공사도 담당했다.

고 정 회장은 목재와 관련된 일이라면 '성남목공 사장'부터 찾았다고 김 회장은 전했다.그는 "청운동 자택부터 시작해 정 회장 형제의 자택 목창호 공사는 모두 담당했다"며 "믿고 맡기는 만큼 완벽하게 시공해야 한다는 부담도 컸다"고 한다.1970년대 아파트 건설 붐이 일면서 이 회사는 본격적인 성장가도를 달렸다.압구정동 아파트를 비롯해 1970년대 건설된 현대 아파트의 목창호를 대부분 납품했다.

공교롭게도 창사 이래 맞은 최대 위기도 현대건설에서 비롯됐다.현대건설이 1978년 설립한 계열사인 현대종합목재에 목창호 공사를 맡기기 시작하면서 이 회사의 물량이 확 줄어든 것이다.김 회장은 "학연 등을 동원해 다른 건설사들의 물량을 어렵사리 따내면서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며 "한 기업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크면 위험하다는 교훈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말했다.

1998년 우리나라를 강타한 외환위기는 성남기업에는 오히려 성장의 기회였다.중소 건설사들의 잇따른 부도로 소규모 목창호 기업들이 문을 닫자 기술 경쟁력을 갖춘 이 회사의 물량이 40% 이상 증가했다.

김 회장은 성남기업의 최대 경쟁력으로 '사람'을 꼽는다.지난해까지 43년간 이 회사에 재직한 최영석 전 기술이사(70)는 독보적인 전통한옥 건립 기술을 보유해 '걸어다니는 문화재'로 불린다.또 현재 60여명의 목공 기술자 가운데 20년 이상 근무한 장기 근속자가 절반을 넘는다.그는 "이들은 선대의 기술을 고스란히 전수받은 장인들"이라고 자랑한다.

이 회사의 목공 장인들이 1970~80년대에 직접 개발한 기계장비만 10여종.대부분 3~4단계의 생산공정을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획기적인 장비들이다.김 회장은 "아무리 기계화가 이뤄졌다 해도 자재 선정부터 최종 마무리 작업까지 숙련된 전문가의 손을 거쳐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 회장은 향후 성남기업이 100년 이상 존속하는 장수 기업으로 남는 최대 관건으로도 '사람'을 들었다.그는 "대목의 장인 기술을 이어받을 젊은이들이 부족한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지난해부터 준비해온 '젊은 목공 양성 프로그램'을 본격적으로 운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