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검사장비 제조업체로 미국 나스닥시장 상장 1호 기업인 미래산업이 9년 만에 해외 주식을 상장폐지키로 했다.이는 새로운 수익사업을 찾지 못해 쇠락하고 있는 국내 벤처기업의 현실을 반영하는 결과로 풀이된다.

미래산업은 지난 3일 이사회에서 나스닥에 상장돼 있는 주식예탁증서(ADR)를 폐지하고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등록을 취소키로 결의했다.미래산업은 오는 28일 정기주총에 상장폐지 안건을 올린 뒤 정확한 상장폐지 주식 수와 일정을 확정할 계획이다.

회사 관계자는 "나스닥에 남아있는 물량이 23만1000여주에 불과한 데다 하루 거래량이 많아야 100주 정도에 그치는 등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상태"라고 말했다.이 관계자는 "더욱이 사베인스-옥슬리법안 시행으로 감사위원회를 설치해야 하는 등 회계감사 비용까지 급증해 상장 유지에 따른 실익이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미래산업은 벤처 1세대인 정문술 전 회장이 1983년 창업한 회사로,한국의 대표 반도체 장비업체로 성장해 1999년 나스닥에 상장됐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미래산업이 기존 반도체 검사장비 외에 새로운 수익원을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데 따른 결과라는 분석이다.실제 미래산업은 최대 고객이던 삼성전자가 2001년 테스트 핸들러 납품계약을 해지한 뒤 최근엔 테스트 핸들러 소모품 납품을 받지않고 있다. 이에 따라 미래산업은 현재 하이닉스와 독일 키몬다(옛 인피니언),미국의 샌디스크 등에 납품하며 명맥을 잇고 있다.

미래산업은 지난해 비영업자산 등을 매각하며 7억원의 순이익을 냈으나,매출은 전년보다 5.5% 감소하는 등 성장세가 둔화되는 양상이다.

이에 따라 이 회사는 경기 변동에 대응할 수 있도록 태양전지 기기 및 로봇청소기 제조 등 신사업을 사업목적에 추가키로 했다.

이에 앞서 삼보컴퓨터의 자회사인 두루넷과 이머신즈도 미래산업에 이어 1999년과 2000년 각각 나스닥에 올랐으나 정보기술(IT) 거품이 꺼지며 2003년 상장폐지됐다.최근 SK텔레콤에 인수된 하나로텔레콤은 부진한 거래량에 비해 상장유지 부담이 크다는 이유로 지난해 9월 나스닥에서 물러났다.

현재 나스닥에 상장돼 있는 다른 국내 기업들도 사정은 비슷하다.게임 '라그나로크'개발 업체로 잘 알려진 그라비티의 경우 2005년 나스닥으로 직상장했으나 거래 부진으로 결국 일본 기업에 매각됐다.2003년 상장된 웹젠도 대주주의 취약한 지분 탓에 네오웨이브와 라이브플렉스의 적대적 M&A(인수·합병)대상이 돼 나스닥에서 맥을 못 추고 있다.

스틱IT투자의 구경철 전무는 "우리보다 IT기술 및 산업 측면에서 뒤졌다고 평가되는 중국계 기업은 20여개가 넘는다"며 "우리나라 벤처기업들이 나스닥에서 부진한 건 기존 수익사업이 한계에 도달함에 따라 지속적인 성장성을 중시하는 미국 현지 투자자들의 요구를 맞추기 힘들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임상택 기자 lim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