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용 연 <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전무 >

지난달 25일 나는 북한 평양의 대동강변에 위치하고 있는 동평양극장에 다른 사람보다 좀 일찍 나갔다.

1400여석의 좌석이 지정석이 아닌 관계로 미리 좋은 자리를 선점하기 위해서였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무대 왼쪽의 미국국기인 성조기와 오른쪽의 북한 인공기였다.

국기 밑에는 조명기구를 설치해 두 깃발은 공연장의 무게감을 더하기에 충분했다.

잠시 후 품위 있어 보이는 서양인 부부와 북한 고위층으로 보이는 부부들이 자리를 메우기 시작하며 어느 오케스트라 공연과 다름없이 분위기가 잡히기 시작했다.

뉴욕필 오케스트라 지휘자 로린 마젤은 서곡으로 바그너를 시작해 드보르작의 '신세계 교향곡'까지 공연 프로그램을 장중하게 풀어나갔다.

우리나이로 80세인 이 노신사에 대한 존경과 경이로움으로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다음 곡을 위해 몇몇의 연주자가 다시 배치되는 사이,로린 마젤은 두 번의 인사를 받으며 무대 뒤로 나갔다 재등장했다.

인터미션 없이 바로 본곡으로 들어간다.

악보대 위에 준비된 마이크를 잡고 영어로 곡에 대해 간단한 코멘트를 한다.

"Someday…,An American in Pyoungyang"이라고.통역을 위해 무대 오른쪽에 긴 한복(보통 짧은 치마를 많이 입지만)을 입은 여성이 "언젠가 평양거리에서의 미국인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통역했다.

로린 마젤은 무대 중앙으로 걸어나올 때 노령의 나이 탓도 있겠지만 다소 흐느적해 보이는 걸음걸이다.

지금은 나이가 들어 다소 작아보이지만 큰 키에 누가 보아도 과거의 영광이 보이는 우아함과 멋스러움이 묻어 나오는 외모다.

곡은 중반으로 달려가며 드디어 노 지휘자는 한 평 남짓한 지휘대에서 두 다리를 휘청이며 춤을 추었다.

케빈 코스트너의 '늑대와 함께 춤을'이 아니라 로린 마젤의 '평양과 함께 춤을'이다.

내년 4월이면 이 노 지휘자는 뉴욕필을 떠난다.

젊은 새 지휘자를 맞는 뉴욕필은 로린 마젤의 이번 아시아투어를 모두 한 장의 DVD로 기록 제작하기로 했다고 한다.

비록 미국과 북한의 한 발 더 나아간 외교적 수단으로 시도됐건,아니면 또 다른 의미로 시작됐건 이번 공연은 여러 의미가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몸담고 있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이 계열사인 아시아나항공을 통해 특별기를 지원해 뉴욕필의 평양방문에 일정 역할을 했다는 것이 매우 자랑스럽고 뿌듯하다.

이러한 노력이 이번 공연을 통해 북한 음악의 발전과 한반도,나아가 세계의 평화에 기여하게 되기를 바란다.

금호아시아나와 로린 마젤의 인연은 짧지 않다.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은 이미 뉴욕필을 두 번이나 서울에 초청해 공연을 가진 바 있고,로린 마젤은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이 발굴한 음악영재들과 무대에 서는 것을 기꺼이 즐겼다.

물론 이를 통해 한국의 클래식 영재들도 성장했다.

이제 우리는 로린 마젤을 한 장의 DVD로나마 접할 수 있게 된다.

18세의 귀여운 막내 아들을 데리고 인천공항을 떠나는 노 신사에게 평양,서울 공연,그리고 2006년 서울공연으로 꽤나 친해졌다고 생각하고 "한국에 오고 싶으면 언제든지 나에게 연락을 달라"고 인사말을 했더니,명함을 달라고 한다.

순간 나는 '그동안 나만의 짝사랑이었구나'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이 시대의 위대한 지휘자의 머릿속에 음악 외에 무엇이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An American in Pyoungyang'이라는 코멘트는 이 분으로서 참으로 쉽지 않은 제스처였음이 틀림없다.

이것이 정치적 접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