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이었을까요.처음에는 가업을 이을 생각이 없었는데,어느 순간 회사가 부르더군요."(송인섭 회장)

진미식품이 가업을 3대째 잇는 과정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사업을 물려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과 새로운 생활을 꿈꾸는 자식의 마음이 서로 달라서였다.

창업주 고(故) 송희백 회장은 장남인 송인섭 회장에게 "장을 만드는 일은 크게 돈 버는 일은 아니지만,투기만 하지 않는다면 대를 이어가면서 밥을 먹고 살 수 있는 사업"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아들에게 장류제조업을 넘겨주고 싶은 뜻을 분명히 나타낸 것이다.하지만 송 회장은 성균관대 약학과로 진학했다."장 만드는 일이 내키지 않았습니다.냄새가 나는 데다 힘들지 않습니까.멋져보이는 제약회사 세일즈맨이 되려고 했죠."(송 회장)

대학을 졸업하고 ROTC 1기로 입대한 그는 전역하기 6개월 전인 1965년 3월 휴가를 나왔다가 우연히 신문에서 '대창장류사(진미식품 옛이름) 공장이 화재로 전소됐다'는 기사를 보고 깜짝 놀랐다.한달음에 달려간 공장 터에는 아버지가 넋나간 듯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송 회장은 전역한 뒤 공장을 되살리는 일을 돕기 시작했다.

"한 번은 약사가 된 대학동기가 헤프게 돈 쓰는 모습을 보고 아버지에게 '나도 저렇게 살고 싶었다'며 투정을 부린 적이 있었습니다.아버지께서 '지금 보기에는 그 애들이 부럽겠지만 사내대장부라면 모름지기 자기 기업을 하는 법'이라고 타이르셨죠."

송 회장의 뒤를 이은 3대 송상문 사장도 비슷한 방식으로 회사에 들어왔다.중앙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송 사장은 1997년 스물여섯 살 나이에 갑작스레 회사로 불려들어왔다.고춧가루 파동에 외환위기까지 닥쳐 회사 경영이 어려워지자 송 회장의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졌기 때문이다.해외에서 경영학석사(MBA)를 따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마쳐놓은 상태였지만 꿈을 미뤄야 했다.

송 사장은 "때가 되면 회사를 이어받아야겠다는 생각은 가끔 했지만 당시에는 미처 마음의 준비가 안 된 상태였다"면서 "가능한 한 빨리 회사일을 익히려고 모든 부서에서 사원 자격으로 돌아가며 근무했다"고 설명했다.송 사장은 2005년 전무이사로 승진했으며 지난해 2월부터 일선에서 물러난 송 회장을 대신해 대표이사 사장을 맡고 있다.

송 회장과 송 사장의 사업 스타일은 다르다는 것이 주변의 평가다.송 회장은 매사에 신중한 편이다.선친이 일군 사업을 오랫동안 지켜내느라 그런 태도가 몸에 뱄다.대전상공회의소 회장을 맡고 있으며 지인들과의 술자리를 즐긴다.반면 진취적이고 개방적인 스타일의 송 사장은 거침없이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좋아한다.직원들과도 친구처럼 허물없이 지내지만 술은 거의 하지 않는다.송 사장은 "회장님과 사업 이야기를 하면 견해 차가 많은 편이어서 초기에는 충돌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 의견이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잘 알고 있다"며 "회장님은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