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avo! My life] 유인촌, 하루 세시간 걷고 자전거 타고 생각은 지구 두 바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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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복판에서 하루 3시간씩 홀로 걷거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있다. 한강 둔치를 따라 페달을 밟으며 석양이 녹아내리는 강 풍경을 즐기거나 청계천을 거쳐 서울숲 일대까지 무작정 걷는다. 서울 시청에서 출발해 종각을 지날 때는 치솟은 빌딩들과 내면의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 내정된 '배우' 유인촌씨(57)다.
그는 무대에 설 때도,대선 후보 지지를 위해 연설 단상에 오를 때도 일과가 끝나면 걸어서 집으로 왔다. 자리를 이동할 때에는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약속 장소로 출발한다. 그래야만 차를 이용하는 그들의 도착 시간에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거리가 정 멀면 자전거를 이용한다. 간편한 복장에 헬멧을 쓰고 서울 시내 곳곳을 누빈다. 그러다 보니 하루 평균 3시간이 그가 홀로 걷거나 자전거를 타는 '정량 시간'이 됐다.
장관으로 내정된 지금도 그의 사는 방식은 달라지지 않았다. 주변에선 그를 보고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과 죽이 잘 맞는다고 한다. 안되는 일을 밀어붙여서 되게 만드는 업무 스타일 뿐 아니라 '엄청나게' 바쁜 와중에도 걷고,또 페달을 밟기 때문이다.
그가 걷기를 시작한 것은 1985년. 연기자로서 최고의 주가를 올리던 시절이었다. 일정이 바빠질수록 배우로서의 '내공'을 원하는 만큼 끌어낼 수 없다는 것에 회의감이 들었다. 그래서 도전한 것이 호암아트홀 개관작인 연극 '햄릿'이었다.
'햄릿'을 하면서 술 담배를 끊고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건강을 챙기고 홀로 스스로를 되돌아보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걸으면서 대사를 외우고 호흡법을 연습했다. 살아가는 방법과 삶의 방향도 세웠다. "물리적으로는 두세 시간을 걷는 것이지만,생각은 지구 두 바퀴를 돌고도 남을 만큼 많이 합니다. 그게 제가 걷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2006년 서울문화재단 대표를 퇴임하고 일본대학 예술학부 객원연구원으로 유학을 하면서부터는 '무조건' 걷는 시간을 더 늘렸다. 한국과는 너무 다른 일본인들의 생활 구석구석을 보고싶었기 때문이었다. 8개월 동안 매일 평균 4~5시간씩 걸었다. 2007년 여름 한국에 돌아와서는 전남 해남 땅끝마을에서 청계광장에 이르는 600㎞의 먼 길을 걸어서 여행하기도 했다. 서울에서 추천할 만한 걷기 코스를 묻자마자 대답이 거침없이 쏟아졌다. "청계천에서 시작해 서울 숲을 지나 성수대교를 지나는 길,대학로에서 출발해 동대문을 거쳐 장충동,동호대교로 이어지는 길… 수도 없이 많죠." 서울의 박물관,미술관,사찰 등 테마별로 이뤄진 문화지도를 만들고 싶은 것도 이들 길을 지나며 봐온 주변의 풍광들을 혼자 즐기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문화지도 만들기의 시작으로 지난 1월1일에는 지인들과 함께 서울 지하철 4호선 한성여대 입구역에서 출발해 혜화문,성북동,삼청동,숙정문,세검정,인왕산을 거쳐 사직공원 옆으로 걸어서 내려왔다. 열흘 뒤에는 남산에 올랐다가 낙산으로 내려와 다시 한성대까지 걸어갔다.
"당시 남대문 앞에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때 남대문을 마지막으로 봤다는 게 지금도 믿기지 않아요. 구체적인 복원 대책은 취임 뒤 발표할 예정이지만 무엇보다 우리 문화재를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부터 가지도록 하는 게 우선 아닐까요."
누구보다 바쁜 생활 속에서 일부러 시간을 내 걷거나 자전거를 타는 것이 귀찮지는 않을까. 하지만 그는 자신을 불편하고 힘들게 만들 때 비로소 안심이 된다고 했다. 몸이 편안해지면 알 수 없는 죄책감이 들 만큼 스스로를 못살게 군다. 장관 내정 소식을 들은 뒤부터는 아예 한국문화 발굴을 위해 주말마다 찾아다닐 도보 계획표도 만들고 있다. 교수,극장 대표,연출가,배우 그리고 곧 취임하게 될 장관 등 여러개의 직함 중 가장 존재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묻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이 튀어나왔다. "무대에 선 제 모습을 본 적 있어요? 본 적 있으면 그런 질문 못할 겁니다. 장관으로서 최선을 다하겠지만 생의 마지막에서는 배우로서 죽고싶습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
그는 무대에 설 때도,대선 후보 지지를 위해 연설 단상에 오를 때도 일과가 끝나면 걸어서 집으로 왔다. 자리를 이동할 때에는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약속 장소로 출발한다. 그래야만 차를 이용하는 그들의 도착 시간에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거리가 정 멀면 자전거를 이용한다. 간편한 복장에 헬멧을 쓰고 서울 시내 곳곳을 누빈다. 그러다 보니 하루 평균 3시간이 그가 홀로 걷거나 자전거를 타는 '정량 시간'이 됐다.
장관으로 내정된 지금도 그의 사는 방식은 달라지지 않았다. 주변에선 그를 보고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과 죽이 잘 맞는다고 한다. 안되는 일을 밀어붙여서 되게 만드는 업무 스타일 뿐 아니라 '엄청나게' 바쁜 와중에도 걷고,또 페달을 밟기 때문이다.
그가 걷기를 시작한 것은 1985년. 연기자로서 최고의 주가를 올리던 시절이었다. 일정이 바빠질수록 배우로서의 '내공'을 원하는 만큼 끌어낼 수 없다는 것에 회의감이 들었다. 그래서 도전한 것이 호암아트홀 개관작인 연극 '햄릿'이었다.
'햄릿'을 하면서 술 담배를 끊고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건강을 챙기고 홀로 스스로를 되돌아보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걸으면서 대사를 외우고 호흡법을 연습했다. 살아가는 방법과 삶의 방향도 세웠다. "물리적으로는 두세 시간을 걷는 것이지만,생각은 지구 두 바퀴를 돌고도 남을 만큼 많이 합니다. 그게 제가 걷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2006년 서울문화재단 대표를 퇴임하고 일본대학 예술학부 객원연구원으로 유학을 하면서부터는 '무조건' 걷는 시간을 더 늘렸다. 한국과는 너무 다른 일본인들의 생활 구석구석을 보고싶었기 때문이었다. 8개월 동안 매일 평균 4~5시간씩 걸었다. 2007년 여름 한국에 돌아와서는 전남 해남 땅끝마을에서 청계광장에 이르는 600㎞의 먼 길을 걸어서 여행하기도 했다. 서울에서 추천할 만한 걷기 코스를 묻자마자 대답이 거침없이 쏟아졌다. "청계천에서 시작해 서울 숲을 지나 성수대교를 지나는 길,대학로에서 출발해 동대문을 거쳐 장충동,동호대교로 이어지는 길… 수도 없이 많죠." 서울의 박물관,미술관,사찰 등 테마별로 이뤄진 문화지도를 만들고 싶은 것도 이들 길을 지나며 봐온 주변의 풍광들을 혼자 즐기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문화지도 만들기의 시작으로 지난 1월1일에는 지인들과 함께 서울 지하철 4호선 한성여대 입구역에서 출발해 혜화문,성북동,삼청동,숙정문,세검정,인왕산을 거쳐 사직공원 옆으로 걸어서 내려왔다. 열흘 뒤에는 남산에 올랐다가 낙산으로 내려와 다시 한성대까지 걸어갔다.
"당시 남대문 앞에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때 남대문을 마지막으로 봤다는 게 지금도 믿기지 않아요. 구체적인 복원 대책은 취임 뒤 발표할 예정이지만 무엇보다 우리 문화재를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부터 가지도록 하는 게 우선 아닐까요."
누구보다 바쁜 생활 속에서 일부러 시간을 내 걷거나 자전거를 타는 것이 귀찮지는 않을까. 하지만 그는 자신을 불편하고 힘들게 만들 때 비로소 안심이 된다고 했다. 몸이 편안해지면 알 수 없는 죄책감이 들 만큼 스스로를 못살게 군다. 장관 내정 소식을 들은 뒤부터는 아예 한국문화 발굴을 위해 주말마다 찾아다닐 도보 계획표도 만들고 있다. 교수,극장 대표,연출가,배우 그리고 곧 취임하게 될 장관 등 여러개의 직함 중 가장 존재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묻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이 튀어나왔다. "무대에 선 제 모습을 본 적 있어요? 본 적 있으면 그런 질문 못할 겁니다. 장관으로서 최선을 다하겠지만 생의 마지막에서는 배우로서 죽고싶습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