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없이 일하고 원없이 터졌다."

숭례문 화재 사건의 책임을 지고 12일 사표를 제출한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지난달 10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자신의 재임 기간을 이렇게 요약했다.그러나 현 정부와 함께 공직 생활을 마감하려던 그의 계획은 간발의 차이로 빗나갔다.'국보 제1호'가 소실된 데다 부인을 대동한 외유성 출장 논란까지 겹쳐 불명예 퇴진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유 청장은 이날 오후 기자간담회를 갖고 "3년6개월간 청장 직을 수행하면서 때로는 물의를 빚고 여론의 질타를 받기도 했으나 열정적·적극적·혁신적으로 문화재 행정을 이끌었다"면서 "그러나 국보 1호를 소실했다는 불명예에 어쩌면 죽은 후에도 지울 수 없는 아픔을 안고 떠나게 됐다"고 소회를 밝혔다.

하지만 문화재관리국 시대를 포함해 그가 문화재청 역사에 적지 않은 족적을 남긴 청장이라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2004년 9월 청장 취임 당시 '유홍준'이라는 개인 인지도(25%)보다 낮았던 문화재청 인지도(18%)를 48%까지 끌어올린 공로자이기 때문이다.

그의 재임 기간에 문화재청의 조직과 예산은 비약적으로 성장했다.그를 '국보급 문화재청장'이라고까지 치켜세운 노무현 대통령의 절대적 신임과 '마당발'이라고 할 만한 인적 네트워크,대중적 인지도 등이 그의 강력한 '무기'였다.

취임 이전에 베스트 셀러인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로 유명세를 탔기 때문인지 청장 재직 시절 여론의 도마에도 많이 올랐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 한글 휘호인 광화문 현판을 교체하겠다고 했다가 '과거사 청산 논쟁'에 휘말렸고,2005년 6ㆍ15 공동선언 5주년 통일대축전에 정부 대표단으로 참가했다가 북한 노래를 불러 구설수에 올랐다.문화재청 예산으로 자신의 저서를 구입했다가 대국민 사과를 했고,공직자 재산공개 과정에서 18억원가량의 예금을 보유한 것으로 신고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지난해 5월 경기도 여주 효종대왕릉에서 세종대왕 탄신 숭모제를 지낸 후 참석자들과 함께 재실 앞마당에서 숯불구이로 버젓이 점심 식사를 해 비난받기도 했다.

그는 이날 "온 국민을 참담한 심정으로 몰아넣은 숭례문 소실의 책임은 당연히 문화재청장에게 있다"며 "사직 이후에도 어떠한 형태로든 복원 과정에 참여해 행정 경험과 지식이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아울러 "떠나는 자의 사심 없는 변"이라며 "숭례문의 1차 관리 책임기관을 서울시 중구청으로 규정한 현행 제도는 반드시 고쳐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권역별 지방청을 설립해 일관된 문화재 관리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1만건이 넘는 문화재를 체계적으로 관리해 이번 같은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제도적 보완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