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저 가혹한 확신주의자가 두렵다

가장 눈부신 순간에

스스로 목을 꺾는 동백꽃을 보라

지상의 어떤 꽃도

그의 아름다움 속에다

저토록 분명한 순간의 소멸을

함께 꽃피우지는 않았다

모든 언어를 버리고

오직 붉은 감탄사 하나로

허공에 한 획을 긋는

단호한 참수

나는 차마 발을 내딛지 못하겠다

전 존재로 내지르는

피 묻은 외마디의 시 앞에서

나는 점자를 더듬듯이

절망처럼

난해한 생의 음표를 더듬고 있다

-문정희 '동백꽃' 전문

남도 해안을 따라 선홍빛 한(恨)이 점점이 펼쳐진다.가장 빛나는 순간에 목을 꺾기 위해 녹색 잎 사이로 피를 토하듯 솟아오르는 꽃봉오리들.늙고 시들기 전에 정점에서 소멸하려는 그 처절함을 누가 흉내낼 수 있겠는가.단 한번뿐인 생을 누더기처럼 이어가고 있는 우리에겐 그 거침없는 낙화가 부럽고 두렵다.동백꽃은 땅에 떨어져도 여전히 붉다.

이정환 문화부장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