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듣기 좋은 말을 한답시고

저런 학 같은 시인하고 살면

사는 게 다 시가 아니겠냐고

이 말 듣고 속이 불편해진 마누라가 그 자리에서 내색은 못하고

집에 돌아와 혼자 구시렁거리는데

학 좋아하네 지가 살아봤냐고

학은 무슨 학 닭이다 닭

닭 중에도 오골계(烏骨鷄)!

-정희성 '시인 본색(本色)'전문


남에겐 학처럼 보이는 시인이 정작 아내 눈에는 닭에 불과하단다.그것도 속살이 시커먼 오골계라니…

스스로를 깎아내리며 희화화하는 시인의 고백이 솔직하고 재미 있다.

젊은 시절,예쁜 처녀들이 하품하고 트름하고 화장실까지도 간다는 사실을 알고 경악했던 적이 있다.

인기 배우들의 눈부신 모습과 가끔 폭로되는 그들의 사생활을 동시에 볼 때 난감해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지킬 것은 지키면서 폼나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본능 앞에서 당황했던 때가 얼마나 많은가.

격조나 품위를 지키려 해도 살다 보면 그게 잘 안된다.나이가 들 수록 더하다.

일상으로서의 삶은 학들의 우아한 비상보다는 오골계끼리의 난투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이정환 문화부장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