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트론 매각 놓고 동상이몽

김준기 "하이텍 회생 도와달랬더니…"

진대제 "싼 값에 지분 넘긴게 이상"

동부그룹이 만성적자에 허덕이고 있는 동부하이텍을 회생시키기 위해 경영고문으로 영입했던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과의 인연을 7개월 만에 정리하기로 했다.

업계 관계자는 6일 "지난해 5월 동부하이텍 경영고문으로 영입했던 진대제 전 장관에게 자문을 받지 않기로 했다"며 "그룹에서 추진하고 있는 실트론(반도체 웨이퍼 회사) 지분 매각 과정에서 진 전 장관과 이견이 있어 더 이상 함께 하기가 어렵게 됐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진 전 장관 영입으로 해외 대형 거래처 발굴 등 반도체 사업 확장에 도움을 받을 것으로 기대했지만,진 전 장관은 실트론 지분매각에만 관심이 있었다는 게 그룹의 판단"이라고 덧붙였다.

양측이 동상이몽(同床異夢)이었다는 설명이다.

이 때문에 동부그룹 내에서는 진 전 장관과의 인연이 '처음부터 잘못된 만남이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동부와 진 전 장관의 만남은 시작부터 매끄럽지 못했다.

동부일렉트로닉스와 동부한농의 합병회사인 동부하이텍의 출범식이 열렸던 지난해 5월1일 오영환 동부하이텍 사장은 "진대제 전 장관을 경영고문으로 영입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1시간 만에 오 사장은 이를 번복해야 했다.

진 전 장관이 "결정된 바가 없다"며 부인했던 것.우여곡절 끝에 진 전 장관이 동부호(號)에 합류한 것은 열흘 뒤인 5월11일.그는 "종합반도체 회사로 거듭나는 동부하이텍의 경영고문을 맡아 대형 거래처 발굴 및 경영자문 등의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진 전 장관은 이후 동부하이텍의 전략회의에 몇 차례 참석하는 등 비상임 경영고문역을 수행했다.

하지만 실트론 지분 매각이 추진되면서 동부와 진 전 장관의 사이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룹 일각에서는 "진 전 장관이 거래처 발굴이라는 '본업'보다는 실트론 매각이라는 '부업'에 더 관심이 있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동부는 지난해 동부제강을 통해 제철사업에 뛰어들면서 6200억원의 설비(전기로) 투자비가 필요했다.

동부는 자금조달이 여의치 않자 동부제강 동부건설 등 5개 계열사가 보유하고 있던 '알짜배기' 회사 실트론의 지분(49%)을 매각키로 결정했다.

지분매각을 통해 7000억원 정도의 자금을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동부는 지난해 11월 매각주간사인 JP모건을 통해 실트론 지분 49%에 대한 공개입찰에 들어갔고,진 전 장관은 자신이 대표로 있는 사모펀드 스카이레이크인큐베스트(일명 '진대제 펀드')를 통해 지분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당시 스카이레이크인큐베스트가 공개입찰에 써낸 인수대금은 6000여억원.하지만 동부는 7078억원의 입찰가를 제시한 보고펀드와 KTB네트워크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동부제강과 동부건설 등은 지난해 12월14일 이사회를 열어 실트론 지분 47%를 보고펀드 측에 넘기기로 결의했다.

그리고 사흘 뒤인 12월17일 동부정밀화학도 보유 중인 실트론 지분 2%를 보고펀드에 매각하기 위해 이사회를 열었다.

진 전 장관은 동부정밀화학 이사회 개최를 앞두고 "8000억원을 주겠다"고 동부그룹 측에 전격 제안했다.

동부는 "우선협상대상자가 선정된 뒤 입찰가를 높여 인수 제안을 해오는 것은 '업계의 룰'을 무시한 것"이라며 난색을 표했다.

진 전 장관은 동부의 거절에 대해 "1200억원을 더 주겠다는 데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사실상 경영진의 '배임'에 해당된다"며 이사회를 압박했다.

결국 동부정밀화학 이사회는 이날 실트론 지분 2% 매각안을 부결했다.

그리고 열흘 뒤 다시 이사회를 열어 원안 계약대로 실트론 지분을 보고 측에 넘기기로 결의했다.

동부정밀화학은 이로 인해 '불성실공시 법인'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이 사건으로 동부그룹은 반도체 사업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영입했던 진 전 장관과의 관계를 끊기로 결정했다는 게 그룹 안팎의 정설이다.

현재 세계 최대 가전 전시회인 'CES 2008'을 참관하기 위해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출장 중인 진 전 장관은 이날 기자와의 통화에서 "우리 측에서 1200억원을 더 준다는 데도 싼값에 급하게 처분한 게 이상하지 않느냐"며 "그동안 비상임 무보수로 일해왔으며 경영고문 계약 해지에 대해서는 결정된 바 없다"고 밝혔다.

그는 "실트론 지분매각 과정에 대해서는 말할 것이 없다.

회사 측에 물어보라"고 덧붙였다.

박상일 스카이레이크인큐베스트 부사장은 "실트론 매각과 (진 전 장관의) 고문직은 무관했다"며 "오히려 입찰과정에서 보고펀드 측이 내부자거래 등으로 문제를 삼아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김현예 기자 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