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팍스 시니카' 세계경제 바꾼다
중국의 최대 경제도시 상하이 시내에서 차를 타고 서남쪽으로 한 시간 정도 달리면 조잡한 간판과 퇴색한 건물 일색인 민항구(閔行區)에 이른다.상하이 권역이지만 중국의 여느 시골 마을처럼 낙후된 곳이다.

그곳에서 한 블록 더 들어가면 최첨단 냄새가 물씬 풍기는 쯔주(紫竹) 과학원구.정문을 통과해 우주선 모양의 건물들을 지나자 영어로 쓰인 'intel'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바로 옆에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연구소 공사 현장.길 건너에는 얼마 전 중국 최초로 90인승 중형 비행기를 만든 중국항공공업의 연구센터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다.

2002년까지만 해도 이곳은 논밭이었다.지금은 90% 이상이 다국적 기업과 중국의 연구소 100여 개로 채워진 '첨단 글로벌 연구개발(R&D)밸리'로 환골탈태했다.

입주 조건은 딱 한 가지. '최첨단 회사여야 한다'는 것(쑨파취앤 쯔주과학원구 상회 부회장).중국이 '세계의 공장'에 머물지 않고 '세계의 R&D 기지'로 발전하고 있는 현장이다.

이런 변화가 전국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지난해 12월24일 톈진 빈하이신구에 있는 톈진 공항은 활주로 두 개를 동시에 새로 놓는 공사로 분주했다.

바로 그 옆에서 에어버스가 비행기 생산 공장을 짓고 있다.

세계에서 대형 여객기를 생산하는 네 번째 도시가 된다.빈하이신구엔 벌써 글로벌 500대 기업 중 152개가 생산 공장을 갖고 있다.소금밭이었던 이곳은 중국 정부가 60조원을 쏟아부으며 다국적 기업의 첨단제품 생산 기지로 '염전벽해'를 이뤘다.

러시아와 일본의 식민지였던 랴오닝성 다롄엔 인텔의 25억달러짜리 공장이 들어선다.이곳에서 2010년부터 반도체 칩이 쏟아져 나온다.

덩치 자체만으론 전 분야 1위 석권도 멀지 않았다.철강 시멘트 주요 170여개 품목의 교역량 1위,기업공개 시장 규모 1위,구매력 환산 기준 국내총생산(GDP) 세계 2위로 2013년 1위인 미국 추월 전망 등등. 파워는 금융 부문에서 더 실감하게 된다.중국이 보유 중인 미국 국채(작년 10월 말 현재 3881억달러)를 내다팔까 봐 국제 금융계는 바짝 긴장하고 있다.

월가의 자존심인 모건스탠리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로 손실이 커지자 중국의 국부 펀드에 SOS를 쳤고 50억달러를 긴급 수혈받았다.

'팍스 시니카' 세계경제 바꾼다
중국발 물가 상승은 세계를 인플레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미국 영국은 과거의 나라이고 중국은 미래의 나라"(사회과학연구원 위융딩 세계정치경제연구소장)라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베이징 올림픽이 열리는 2008년은 중국이 개혁·개방으로 자본주의를 받아들인 지 3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영국 경제주간 이코노미스트는 올해를 '팍스 시니카(Pax Sinica·중국 중심의 세계 질서) 시대의 개막'으로 규정했다.

중국이 차이나의 울타리를 넘어 글로벌화를 향한 제2의 경제혁명 시대로 진입했다는 말이다.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작년 공산당대회 개막 연설에서 17차례나 외친 '중화 부흥'은 이렇게 팍스 시니카로 한 걸음씩 구체화하고 있다.

< 특별취재팀 >


< 용어 풀이 >

◆팍스 시니카=라틴어로 팍스(Pax)는 평화(Peace),시니카(Sinica)는 중국(China)이라는 의미.중국 중심으로 세계 질서가 재편되는 것을 뜻한다.로마 제국 시대는 '팍스 로마나',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는 '팍스 아메리카나'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