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출판계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재미있는 현상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인문.예술과 경제경영.자기계발의 접목이다.

이른바 '인문학적 자기경영'이라는 퓨전 혹은 컨버전스(융합)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삼성경제연구소 SERI 최고경영자(CEO)의 인문학 조찬특강 '메디치21'과 서울대학교 인문대학의 '인문학 최고 지도자 과정'에 내로라 하는 CEO들이 대거 몰린 것도 이 같은 트렌드를 뒷받침한다.

이는 '통찰력'과 '창조력'에 대한 독자의 수요가 그만큼 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21세기북스도 몇 년 전부터 기존 경제경영.자기계발서들의 표면적인 한계를 넘어 '무언가 다른 것'을 필요로 하는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요구에 대해 고심해왔고,'인문학적 경영''감성적 자기창조'라는 코드에 주목하게 됐다.

최근에 출간한 '인문의 숲에서 경영을 만나다'(정진홍 지음)와 지난 9월에 펴낸 '시 읽는 CEO'(고두현 지음)는 우리의 기대를 확신으로 바꿔준 성공작이었다.

'인문의 숲에서…'의 저자인 정진홍 박사는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을 '분석과잉'과 '통찰결핍'이라고 지적한다.

경영 현실에서도 시장 환경은 하루가 다르게 바뀌어 가는데 단순히 '~해라''~하지 마라'식의 케이스별로 대응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결국 필요한 것은 문제 해결이나 새로운 돌파구를 위한 근본적인 통찰력이라는 얘기다.

시장 환경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에서 유,유에서 전혀 다른 유를 만들어낼 수 있고 생각해낼 수 있는 창의력과 창조력이기 때문이다.

'시 읽는 CEO'의 부제가 '20편의 시에서 배우는 자기창조의 지혜'인데,개인의 감성과 창조력을 건드려주는 콘셉트로 독자들의 호응을 얻었다.

이 같은 변화의 흐름을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뉴욕타임스의 'CEO들의 성공의 열쇠'라는 기사다.

이 기사는 '세계적인 CEO들의 큰 특징은 경쟁과 관련된 주제보다 사고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즉 철학이나 역사서적,시집 등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전한다.

언제나 새로운 아이디어로 회사에 변화를 이끌어 가는 CEO의 서재를 채우고 있는 도서들은 놀랍게도 시,소설,전기,역사,철학 같은 인문학 계열 책들이거나 예술서들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나이키 창업자인 필 나이트가 지금도 즐겨 읽는 것은 아시아 역사에 관한 책,미술책,시집이다.

하먼 인더스트리스의 설립자 시드니 하먼은 셰익스피어의 광팬이며,애플사의 최고경영자이자 혁신의 화신인 스티브 잡스는 영국 낭만주의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에서 영감을 얻는다.

이처럼 혁신 기업가들의 비책은 '문.사.철'로 대표되는 인문.고전.예술 속에 숨어있다는 것이다.

미국의사협회 공증부문 책임자로 아리스토텔레스에 심취한 데이비드 리치도 CEO 책읽기의 특성을 '직계 스승이 아니라,스승의 스승을 좇는 것'이라고 요약했다.

이미 성공한 사람들의 얘기인 경영서가 아니라 고전과 인문학에서 새 길을 개척하고 있다는 얘기다.

김성수 21세기북스 인문.실용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