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권사들의 해외 진출이 빨라지면서 자산운용사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

JP모건 등 세계적 금융사들이 자산운용에 기반을 둔 것처럼 현지 자본투자를 통한 수익확대를 위해선 자산운용사의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자산운용사를 활용한 국내 증권사의 '투톱형' 해외진출 전략이 주목받는 것은 운용사가 금융사 간 경쟁의 열쇠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


증권사가 나홀로 진출하는 기존 방식과 달리 운용사가 미리 진출해 전위대 역할을 해주는 구도는 초기 시장진출 리스크를 줄이는 동시에 현지형 금융상품 개발을 통한 공격적 시장공략이 가능한 게 장점이다.

한국투자증권이 5개의 베트남 유가증권 펀드와 부동산 특별자산펀드 등을 통해 베트남시장에서 벌써 1조원을 투자할 수 있었던 것도 증권에 앞서 현지에 나가 있던 한국투자신탁운용 덕분이다.

2003년 홍콩을 시작으로 싱가포르 베트남 인도 영국 중국 등 5개국에 진출해 있는 미래에셋자산운용은 해외펀드 붐에 힘입어 전 해외 자산운용법인이 흑자를 내고 있다.

운용사가 미리 터를 닦아놓은 덕에 올해 홍콩에 현지법인을 설립한 미래에셋증권도 첫해부터 흑자를 기록하는 '윈윈' 효과를 거두고 있다.

손동식 미래에셋자산운용 본부장은 "운용사도 공격적 투자를 위한 자본확충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어 상장을 추진하는 곳도 나올 것"으로 내다봤다.

카자흐스탄 베트남 등에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는 국내 증권사들이 현지 자산운용사 인수나 신규 설립에 주력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올해 UBS가 대한투신운용을 인수하고 골드만삭스가 지난 10월 맥쿼리-IMM자산운용 지분 100%를 사들여 국내 시장에 진출한 것도 금융 빅뱅시대의 운용사 위상 강화를 반영하고 있다.

자산운용업은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을 앞둔 국내시장에서 선택의 문제가 아닌 생존의 필수조건이다.

펀드시장의 성장세를 놓고 볼 때 금융시장에서 발전 가능성이 가장 높기 때문이다.

증권사 매출에서 위탁매매 비중이 감소하고 있는 가운데 향후 퇴직연금 국민연금 등 대규모 공적자금 유입이 본격화될 예정이어서 운용업의 매력은 한층 높아지고 있다.

최근 대한화재 인수를 통해 보험업에 진출한 롯데그룹이 자산운용시장에 관심을 보이는 것도 이런 이유로 분석된다.

외국인의 직접 투자가 제한된 중국시장 공략을 위해 삼성증권 등 주요 증권사들이 자산운용사를 앞세워 QFII(적격 외국인 기관투자가) 획득에 사활을 걸고 있는 것도 주식 위탁매매보다 PI와 상품개발 등에 무게를 두고 있어서다.

특히 자통법 시행을 앞두고 당국이 신규 운용사의 영업허가를 제한하고 있어 중소형 운용사들의 몸값이 치솟는 현상까지 일어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자통법 시행과 적극적인 해외진출을 통해 증권업계의 새판 짜기가 예상되는 만큼 자산운용사 설립에 대한 정책당국의 대응도 유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