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을 불과 9일 앞두고 범여권이 심각한 무력감에 빠져들고 있다.

절망적인 지지율에 마지막 희망을 걸었던 후보 단일화는 사실상 물 건너갔다.

'한방'을 기대하며 올인했던 BBK도 '헛방'으로 드러났다.

대선일은 다가오는데 마땅한 반전카드가 없다.

"도무지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비관론이 확산되면서 의원들도 대선전에 뒷짐을 지는 등 전열마저 크게 흐트러진 상태다.

무엇보다 범여권 후보의 12월 지지율로는 역대 최악이다.

범여권 내 1위를 달리고 있는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의 지지율은 여전히 15% 안팎에 머물러 있다.

범여권의 다른 후보인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와 이인제 민주당 후보의 지지율을 합해도 20% 초반에 불과하다.

1997년과 2002년 대선 때 범여권 후보의 12월 초 지지율(비공개)이 모두 40%대였던 것에 비교하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40%대의 지지율로 1위를 달리고 있는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를 넘어서기엔 역부족이다. 현 집권세력에 대한 민심이반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반증이다.

문제는 '이명박 독주'를 막을 '히든카드'가 없다는 점이다.

정 후보는 이명박 후보를 겨냥한 총체적인 네거티브 캠페인을 전개했다.

신문광고를 온통 이 후보 공격으로 채웠다.

정책적으로도 1주택 장기보유자에 대한 종합부동산세 면제와 대학입시 제도·영어시험 폐지 등 자신의 색깔과 맞지않는 파격적인 정책까지 이미 다 동원했다.

게다가 당에서 어렵사리 찾아낸 이 후보의 위장전입과 자녀의 위장취업 등 호재들조차 아예 쟁점이슈 대열에서 사라져버렸다.

BBK에 올인한 전략적 실책이 낳은 결과다.

신당이 검찰수사 결과에 반발해 BBK에 매달리는 것도 대안부재에 따른 고육책이라는 시각이 많다.

비관론이 커지면서 후보 캠프의 핵심의원들을 제외한 대다수 의원은 내년 4월 총선 준비를 위해 아예 지역구에 상주하고 있다.

BBK규탄 시위를 위해 의원들을 모으는 것조차 쉽지 않은 게 신당의 현주소다.

마지막 승부수로 여겼던 범여권 후보단일화도 정치적 이해관계가 얽히면서 깨졌다.

정·문 후보는 각기 상대의 결단을 압박하면서 자신이 후보가 돼야 한다는 입장만 고수하고 있다.

당내외의 단일화 압력을 받고 있는 이인제 후보도 일단 '마이웨이' 쪽에 무게를 싣고 있다.

범여권이 3분된 채 대선을 치르는 초유의 사태가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범여권이 절박한 위기상황에서도 양보와 희생을 뒤로한 채 각개약진하는 데는 대선에 실패하더라도 내년 4월 총선을 도모할 수 있다는 '동상이몽'이 자리하고 있다.

민주당은 대선에서 패할 경우 신당이 분열되면서 민주당이 다시 개혁진영의 중심에 설 수 있다는 기대감을 버리지 않고 있다.

창조한국당 역시 총선을 통해 신당의 대안세력으로 자리매김하겠다는 구상을 숨기지 않는다.

이재창 기자 lee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