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기업, 종신고용에 英美식 성과주의 접목
도요타ㆍ캐논 등 '하이브리드 경영' 대성공

도요타자동차는 1990년 근로자들의 기본급 비중을 확 줄이는 대신 성과급제를 도입했다.

전통적인 일본식 경영방식인 종신고용제는 유지하되 임금제도에서 만큼은 미국식 성과주의를 따른 것.신일본제철은 창립 이래 처음으로 올초 40만여명의 개인주주를 대상으로 의식조사를 실시하고,제철소로 직접 초청해 설명회도 가졌다.

글로벌 경영환경에서 세계 최대 철강회사인 아르셀로미탈 등의 기업 인수합병(M&A) 위협이 가시화되자 '주주 관리'에 본격 나선 것이다.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신호(1일자)에서 '일본의 경영'이란 특집기사를 통해 일본 기업들의 '하이브리드(hybrid) 경영'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하이브리드 경영은 일본의 전통적 경영방식에 미국식 경영을 접목시킨 혼합 경영이다.

마치 하이브리드차가 전기 모터와 휘발유 엔진을 번갈아 사용하며 효율을 높이듯이 일본 기업들은 일본식 경영과 미국식 경영의 장점을 적절히 조화시켜 높은 경영성과를 올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재팽글로색슨 자본주의'(Japanglo-Saxon Capitalism:일본과 영미식 자본주의의 혼합)라는 말까지 붙였다.

하이브리드 경영은 1990년대 구조조정기를 거치면서 일본 기업들 사이에 퍼졌다.

영국 킹스칼리지와 일본 와세다대학이 723개 일본 기업을 공동 분석한 결과, 소위 하이브리드 경영을 도입한 회사가 전체의 24%를 차지했다.

일본식 경영을 고수하는 기업은 42%였고,나머지 34%는 하이브리드 경영과 일본식 경영의 중간 정도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이브리드 경영을 도입한 회사가 24%라면 적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 기업이 전체 고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67%라는 점을 알면 얘기는 달라진다.

도요타 캐논 미쓰비시 히타치 야마하 NTT도코모 등 주로 글로벌 경쟁력이 있는 큰 기업들이 하이브리드 경영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들 기업의 특징은 성과ㆍ효율 중시의 미국식 경영과 일본식 경영을 혼합 채용하고 있다는 점.하이브리드 경영 기업 중 94%는 여전히 일본식 경영의 특징인 종신고용제를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절반에 가까운 45%의 기업이 성과급제를 도입했고,39%는 종업원들에게 스톡옵션(주식매수선택권)을 주고 있다.

상당수 기업들은 이사회에 사외이사를 참여시킨다.

은행을 통해 자금을 차입하기보다는 미국 기업처럼 자본시장에서 주식이나 채권을 발행해 돈을 조달하는 데 익숙하다.

이들 기업은 전적으로 미국식 경영을 추구하지 않는다.

하이브리드 경영 기업으로 꼽히는 금융서비스 회사인 오릭스의 야나세 유키오 부사장은 "우린 미국식 경영으로 갈 생각이 없다"며 "미국과 일본의 중간쯤에 있는 하와이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완전한 미국식도 아닌,그렇다고 일본식도 아닌 '제3의 길'을 걷겠다는 얘기다.

현재까지 하이브리드 경영은 성공했다는 평가다.

하이브리드 방식을 택한 도요타 신일철 캐논 등 주요 기업들은 최근 수년 사이 사상 최대의 경영실적을 냈다.

덕분에 일본 경제는 2002년 초 이후 회복되기 시작해 전후 가장 긴 경기상승기를 구가하고 있다.

그렇다고 하이브리드 경영이 일본 경제의 앞날까지 보장하고 있는 건 아니다.

하이브리드 경영의 성공이 일본 경제성장의 선순환을 일으켜 지역ㆍ계층 간 격차문제를 해소하는 처방약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저성장,막대한 적자로 점철된 재정난의 벽을 넘지 못한다면 하이브리드 경영은 한때의 성공신화에 그칠 것"이라고 신세이은행의 포르테 이코노미스트는 지적했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