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내에 '인간 블랙박스'가 나온다.

대용량 스토리지(저장장치)로 삶의 궤적을 낱낱이 기록해 기억상실증 환자의 기억 복원에 활용하는 시대가 온다.

릭 라시드 마이크로소프트(MS) 기술연구소 총괄 수석부사장은 2일 서울 워커힐호텔에서 열린 '21세기 컴퓨팅 컨퍼런스'에서 이같이 전망했다.

라시드 부사장은 앞으로 테라바이트(TB) 이상의 스토리지 기술이 인간의 삶을 바꿔놓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테라바이트는 인간의 출생부터 사망까지의 모든 대화를 음성으로 저장하고도 남는 용량이다.

그는 "엄청난 양의 비즈니스 데이터,과학 데이터를 스토리지에 저장하게 되면 의학 생물학 등과 연계해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MS연구소는 이런 기술을 주도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예를 들어 대학교수 A씨가 교통사고를 당해 대학생 및 연구원 시절의 기억을 잃었다고 하자.하지만 A씨의 시계 휴대폰 컴퓨터 등에 부착된 스토리지는 A씨가 지인들과 나눈 모든 대화와 사진,동영상,강의 등을 저장하고 있다.

A씨는 이를 토대로 잃어버린 기억의 조각들을 모을 수 있다.

MS는 이날 초소형 '센스캠'을 공개했다.

이는 테라급 스토리지와 함께 '인간 블랙박스'를 구성하는 핵심 기기다.

센스캠은 눈에 띄는 것을 녹화하고 대화를 녹음하는데 쓰인다.
라시드 박사는 10년 내에 테라급 스토리지가 부착된 센스캠으로 삶의 궤적을 기록하는 세상이 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라시드 부사장은 "앞으로 10년 동안 컴퓨터 공학 분야에서 엄청난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며 "모든 디지털 기기는 서로 소통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MS는 현재 '스마트 서피스'라는 기술을 개발 중이다.

손가락 하나만 접촉할 수 있는 기존 터치스크린과 달리 여러 사람이 동시에 한 화면에서 컴퓨터나 인터넷을 조작할 수 있게 하는 기술이다.

라시드 부사장은 "미국 워싱턴주 레드먼드의 MS 연구소에서는 에이즈,간염,말라리아 등에 관한 백신과 컴퓨팅을 결합한 새로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최근까지 MS의 아시아 연구소를 총괄했던 해리 셤 박사는 컨퍼런스에서 "웹에 기반한 '인터넷 경제학'이 수요와 공급에 기반한 기존 경제학을 대체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존 경제학이 수요와 공급 사이의 시간적,공간적 거리를 바탕으로 이윤 극대화와 비용 극소화의 관점에서 모든 이론을 설명하는 반면 인터넷 경제학은 이와는 전혀 다르다는 것.그는 "검색을 통해 수요와 공급을 바로 연결하고 인터넷 광고 등으로 인해 수요와 공급 사이의 간극이 없어지는 '숏 서킷' 현황이 경제학의 근본을 흔들고 있다"며 "앞으로 경제학은 컴퓨터공학과 연계한 '인터넷 경제학'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3명도 인터넷 마케팅과 웹디자인에 큰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안다"며 "인터넷 경제학은 초기 단계인 만큼 앞으로 숏 서킷에 관한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튜링상 수상자인 존 홉크로프트 교수(미국 코넬대 컴퓨터과학부 엔지니어링 및 응용수학과)는 "지금 우리는 컴퓨터공학계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매우 흥미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며 "이를 얼마나 정확히 파악하고 교육에 제대로 투자하느냐가 21세기 국가 흥망성쇠를 가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교수이면서도 "대다수 교수는 완성된 학문을 토대로 모든 것을 말하기 때문에 혁신을 하는데 별로 도움이 안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