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영(27) 씨는 평일 아침 6~9시에 방영하는 SBS TV ‘출발 모닝와이드’에서 날씨를 전달하는 기상 캐스터다. 몇 년 새 방송사마다 이익선 안혜경 현인아 등 이나영 씨의 선배 격인 기상 캐스터 출신 인기 방송인들이 꽤 많이 늘어났다. 한창 현역에서 활동 중인 이나영 씨에게도 알음알음 팬 층이 생겨서 아침마다 그녀가 전해 주는 날씨 소식을 궁금해 하는 이들이 있다. 개중에는 인터넷이나 전화를 통해 방송에서 입고 나온 옷의 브랜드를 묻는 사람들도 눈에 띈다.

그녀가 운영하는 더라벨(www.the-label.co.kr)은 이른바 ‘아나운서 룩’을 표방한 인터넷 패션 쇼핑몰이다. 좋은 옷을 살 수 있는 구매력이 있으나 마땅히 쇼핑할 시간을 내기 힘든 20~30대의 커리어우먼들이 더라벨의 주요 타깃이다. 그녀 또래의 커리어우먼들에게는 지적이면서도 세련된 멋을 풍기는 아나운서들의 방송용 의상이 쇼핑 참고 대상 1순위가 된다.


비싸도 제값 하는 옷 팔아

“제가 방송할 때 입는 옷은 프로그램의 의상 담당자에게 맡기지만 가끔씩 더라벨 옷도 가져가서 선을 보여요. 더라벨의 옷은 공중파 아나운서들을 비롯해 많은 방송인들에게 협찬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유명한 아나운서가 방송에 입고 나간 옷은 매출이 금방 높아지더라고요.”

쇼핑몰이 하도 넘쳐나다 보니 성급한 출발은 무모한 도전으로 보인다. 특히 유명인의 이름을 내건 쇼핑몰은 큰 구설수 없이 문을 닫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성공이라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익을 내는 건 고사하고 금전적 손실과 이미지 훼손까지 계산에 넣으면 유명인에게 돌아가는 피해가 엄청나다는 이야기다. 단순히 개인적으로 옷을 좋아하고 방송계에 몸담은 덕에 트렌드를 먼저 접한다는 이유로 연예인 쇼핑몰을 열어서는 실패하기 십상이다.

“하루에 인터넷 쇼핑몰이 열 개 생기고, 또 백 개가 망한다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더라벨은 작년 가을부터 준비해서 올해 여름에 문을 열었으니까 준비 기간이 꽤 되었지요. 사전 조사 단계에서 웬만한 인터넷 패션 쇼핑몰에는 다 들어가 봤어요. 무슨 물건들을 파는지, 게시판 관리 방식은 어떤지를 살펴서 장단점을 분석했지요. 물건을 주문해 배송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도 알아보고요.”

수많은 사이트를 벤치마킹한 결과 더라벨의 콘셉트대로라면 수요가 있겠다는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 예쁜 옷을 싸게 파는 곳은 많았지만 30세 전후의 여성들에게 고급스러운 옷을 제공하는 쇼핑몰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독특한 디자인과 질 좋은 원단이라면 인터넷에서도 10만 원대가 넘어가는 고가의 옷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겠다는 예측이 가능했다.

“처음에는 비슷한 콘셉트로 정장 계열의 남성 의류도 하려고 했지만 남성들의 수요는 여성들과 또 다르더군요.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히면 여성 의류도 조금 더 캐주얼한 스타일을 함께 취급하고 남성 의류까지 확대할 계획입니다.”

똑 부러지게 콘셉트를 설명하는 그녀도 처음에는 패션 쇼핑몰 운영을 막연하게만 생각했다고 한다. 그녀의 부족한 사업 마인드를 채워 준 것은 공동 운영자인 김형석(28) 대표다. 어린 나이에 일찍부터 악기 수입과 레스토랑 경영으로 사업의 굴곡을 경험한 김 대표는 그녀가 방송인 이나영이라는 타이틀에만 의지하지 않고 주도면밀하게 쇼핑몰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인터넷 쇼핑몰의 30%가 사업자 등록만 한 후 제대로 문을 열어 보지도 못한다고 합니다. 들어가는 시간이나 사업자금, 구비해야 할 요건 등을 무시하고 쉽게 돈을 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덤벼든 사람들이 많아서입니다. 인터넷 쇼핑 사업은 분명히 더 커질 겁니다. 다만 제대로 준비하는 사람만이 성공할 수 있는 분야입니다.”

더라벨은 내년 봄쯤 홍대 앞에 특별한 드레스 카페를 낼 예정이다. 젊은이들이 많은 번화가에 유행 중인 드레스 카페는 차를 파는 동시에 입장료를 받아 웨딩드레스나 교복 등 특별한 의상을 빌려 주고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하는 곳이다. 더라벨의 드레스 카페는 따로 입장료를 내지 않고 차를 마시지 않아도 마음 편히 들를 수 있는 공간으로 꾸밀 예정이다. 제대로 자리를 잡는다면 옷 수십 벌을 갈아입으면서도 눈치 보지 않아도 좋은 오프라인 매장이 될 것이다.


캐스터라는 본분 잊지 않아

그녀는 그동안 동대문시장을 샅샅이 훑고 일일이 인터넷 검색을 하며 쇼핑몰을 준비하고 제품 구입과 코디네이션 등에 관여해 왔다. 의외인 사실은 의상 모델로는 나서지 않았다는 것이다. 유명인이 운영하는 쇼핑몰답지 않게 더라벨 사이트에서는 ‘이나영의 마이 스타일’이라는 메뉴 외에 그녀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마저도 그녀가 제안하는 스타일의 옷을 전문 모델이 입고 있는 사진만을 볼 수 있다.

“제 몸집이 일반인보다 작은 편이어서 모델로는 부적합한 측면도 있고요. 뉴스를 전달하는 보도국과 함께 일하는 기상 캐스터라는 신분 때문에 너무 상업적으로 보일까봐 조심스러운 마음도 있습니다. 물론 프리랜서이긴 하지만 방송이 제 본업이니까요.”

서울대 체육교육과에서 무용을 전공한 그녀는 애초 아나운서에 뜻을 두고 있었다. 방송사 최종 면접에서 떨어지기를 거듭하다가 대기업에 입사해 사내 방송 아나운서로 일하기도 했다. 뜻하지 않게 공채 기상 캐스터에 합격해 3년째 일하고 있는 만큼 기상 캐스터로 입지를 굳히는 것이 목표다.

“젊은 시절 잠깐 얼굴을 비추고 사라지는 일은 없어야겠지요. 이나영 하면 신뢰감이 드는 캐스터가 되고, 그 신뢰감을 기반으로 라디오와 TV에서 전문 MC로 활동하고 싶어요. 나이 들어서도 프로답게 꾸준히 일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지금처럼 아침 방송에서 날씨를 전하려면 새벽 네 시부터 일어나 준비해야 한다. 방송을 끝낸 낮에는 어느 정도 시간이 나지만 쇼핑몰에까지 전력을 기울이기에는 잠이 많이 부족하다. 초기에는 부업 때문에 본업을 등한시한다는 평가를 받을세라 바짝 긴장했다.

“한창 활동하고 있는 방송인이 쇼핑몰 운영을 열심히 하기는 힘든 일이에요. 인터넷이니까 부업삼아 짬을 내어 하기 쉬울 것이라는 기대는 접어야 합니다. 더라벨은 준비 기간이 길었던 만큼 자리 잡는 기간이 짧아서 손을 좀 덜었습니다. 이제부터 저는 홍보 쪽에 주력하려고 해요.”

본업과 부업을 병행하는 스타뿐 아니라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선택과 집중은 중요한 덕목이다. 모든 일을 다 잘 하기에는 우리 능력에 한계가 있고, 최대한의 능력을 발휘해 혼신을 다하더라도 제대로 풀리지 않는 일도 이따금 생겨난다. 방송과 쇼핑몰이라는 두 가지 일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며 삶의 우선순위에 따라 역량을 솜씨 있게 배분하는 그녀에게서 선택과 집중의 묘를 보았다.

김희연 객원기자 foolfox@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