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이슈 분석] '세계의 M&A' 실패에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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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급한 결정 '지름신'과 만나면 '대재앙'
지난 4일 독일 자동차회사 다임러크라이슬러는 주주총회를 열고 회사명을 '다임러'로 되돌리기로 결정했다. 지난 5월 사모펀드 서버러스 캐피털에 크라이슬러 지분을 매각한 데 따른 것이다. 1998년 400억달러를 들여 인수했던 크라이슬러를 막대한 손실 끝에 단 60억달러에 매각했으니 주주들의 입맛은 썼다.
인수·합병(M&A)이 기업의 대표적인 성장 전략으로 자리잡았지만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만은 아니다. 주주나 경영진은 '1+1'이 10쯤 되는 꿈을 꾸지만 때로는 마이너스라는 참담한 수렁으로 빠지는 실패를 겪는다. 베인앤드컴퍼니가 최근 6개 선진국의 M&A 사례 700여건을 조사한 결과 성공 사례는 30%에 불과했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도 기업 인수의 65%가 기업 가치를 높이기보다는 오히려 낮췄다고 전했다.
딜로직은 전 세계 M&A 규모가 지난해 4조4470억달러,올 들어 9월까지 3조8500억달러에 달했다고 밝혔다. M&A가 실패하는 요인을 알아본다.
◆감정적인 판단이 판을 망친다
1999년 주방용품 업체인 뉴웰은 동종 업계에서 이름을 날리던 러버메이드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저렴한 플라스틱 상품을 주로 생산하는 뉴웰과 고급 브랜드로 유명한 러버메이드가 힘을 합치면 주방 업계를 주름잡을 수 있을 것이란 계산이었다. 러버메이드는 매각가로 58억달러를 제시했다. 뉴웰이 해온 M&A 중 최대 규모의 사업보다 10배 높은 금액이었지만 뉴웰의 자신감은 확고했다.
인수 제안부터 계약서에 서명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해야 3주일. 피인수 기업을 깊숙이 파악하기엔 너무 짧은 기간이었다. 러버메이드의 화려한 실적에 가려져 있던 형편없는 소비자 서비스와 과도한 할인 전략 등 근본 문제가 곧바로 불거졌다. M&A 2년 후 뉴웰의 주식 가치는 반으로 떨어지는 등 부진을 면치 못했다.
이처럼 서두르다 나중에 곤란을 겪는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특히 정보기술(IT) 분야에서 이 같은 실패가 잦다. 늘 새로운 기술이 등장해 무대를 뒤집는 곳이 IT 분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초조함과 공포 때문에 이성적인 판단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IT 분야에서 최악의 M&A 사례로 꼽히는 타임워너와 아메리카온라인(AOL)의 합병에서도 이를 엿볼 수 있다. 미디어 제국 타임워너는 2000년 새로이 부상한 닷컴 업계에서도 주도권을 장악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해결책으로 떠오른 것은 거대 인터넷 회사인 AOL과의 합병. 2840억달러라는 사상 최대의 비용을 들였다. 이렇게 2600만명의 인터넷 가입자와 워너브러더스,케이블채널 CNN과 HBO 등을 갖춘 세계 최대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그룹이 탄생했다.
하지만 곧바로 닥친 닷컴 산업의 붕괴와 AOL의 실적 부진으로 시장 가치는 75% 급감했다. 2003년 합병회사의 명칭인 AOL타임워너에서 AOL이란 이름은 아예 삭제됐다.
◆M&A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사업환경의 변화나 실적 감소에 부딪칠 때 M&A에 대한 유혹은 커진다. 시장이 요구하는 근본적인 체질 변화보다 관련 기업을 인수해 상황을 타개하는 게 간단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M&A가 사업상 문제를 모두 해결해줄 것이라는 기대는 금물이다.
장난감 제조업체 마텔은 1999년 핵심사업의 매출이 감소세에 접어들자 M&A로 이를 극복하고자 했다. 파격적인 도전을 즐겨하던 질 배러드 회장은 아동용 교육 소프트웨어업체인 러닝 컴퍼니를 인수해 교육까지 아우르는 종합 회사로 키우고자 했다. 투자자들은 바비 인형과 교육 소프트웨어 산업 사이에 무슨 연관성이 있냐고 질문했지만 구체적인 답변은 없었다. 잘못된 업종 선택으로 5억달러에 이르는 분기별 손실액을 기록하던 마텔은 1년4개월 만에 러닝 컴퍼니를 되팔았다.
통신업체 AT&T도 기술 변화 앞에서 고민을 거듭했다. 전통적인 유선전화 사업의 한계를 깨닫고 광역 케이블 사업에 눈을 돌린 것까지는 좋았다. 1999년 AT&T는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케이블 회사 TCI를 인수한 데 이어 다음 해엔 1위 회사인 미디어원까지 사들였다.
하지만 1000억달러라는 과도한 인수 비용이 두고 두고 발목을 잡았다. 거기다 닷컴 산업의 거품이 꺼지면서 AT&T의 가치는 급속도로 빠지기 시작했다. 위기를 느낀 A&T는 야심차게 시작했던 케이블 사업 자산을 다시 팔아치워야 했다. 잇따른 인수 실패로 허약해진 AT&T는 2005년 경쟁사인 벨SBC에 매각되기에 이르렀다. 같은 기간 경쟁 업체 버라이즌이 M&A 대신 대규모 자체 투자를 통해 광역 케이블 분야에 성공적으로 진입한 것과 다른 결과였다.
◆문화 차이가 발목 잡는다
조직의 문화적 차이와 특수성도 실패를 낳는 요인이다. 다임러의 크라이슬러 인수가 실패에 그친 이유로도 조직 문화의 차이가 꼽힌다. 완고하고 서열을 중시하는 독일(다임러)의 조직문화와 자유롭고 성과 중심인 미국(크라이슬러)의 문화가 끝까지 대립했다는 것이다.
미국 식품 업체 퀘이커오츠는 1994년 자사의 스포츠음료 게토레이가 히트하자 주스 회사 스내플을 인수해 음료 업계에서 영향력을 더 넓히고자 했다. 문제는 두 조직의 대조적인 스타일이었다. 퀘이커오츠가 전형적인 마케팅 이론에 따라 움직이는 '학구파'라면,스내플은 파격과 실험을 내세우는 '괴짜'였다. 직원을 광고 모델인 '스내플 레이디'로 내세우고,인기 라디오 토크쇼 진행자를 브랜드 후원자로 내세우는 등 스내플 특유의 '아마추어리즘'은 늘 신선한 반응을 일으켰다.
하지만 퀘이커오츠는 자신들의 전통적인 마케팅과 경영 방식을 스내플에 그대로 적용하려 했다. 스내플 레이디를 해고한 데 이어 후원자였던 토크쇼 진행자와도 관계를 끊었다. 느낌과 재미를 강조하는 데 익숙했던 스내플 직원들은 반발하고 나섰고 기존 이미지마저 퇴색되면서 스내플의 판매량은 급감했다. 결국 퀘이커오츠는 스내플을 매입 시세(17억달러)의 5분의 1도 안 되는 3억달러에 팔아야 했다.
◆일상적인 사업 과정일 때 성공 가능성 높다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 최근호는 M&A 실패 사례를 통해 '대규모 딜일수록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을 내렸다. 달라지는 시장 상황에 대한 초조함, M&A로 기업 규모와 실적을 획기적으로 키울 수 있다는 과도한 자신감,빠른 성장을 위해 조직 문화의 차이를 무시하는 성급함 등이 대규모 M&A에서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M&A를 여럿 거치면서도 늘 탄탄한 기업 실적을 유지해온 인터넷 장비 업체 시스코는 그런 의미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시스코는 종종 손익분기점에 다다르지도 않은 신생 기업들을 사들인다. 확고한 비즈니스 로드맵만 갖고 있다면 당장의 수익 확대에는 목숨을 걸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스코에서 M&A 전략을 책임지는 네드 후퍼 부사장은 "우리는 단기간에 수익을 높이려는 목적으로는 절대 M&A를 하지 않는다"며 "M&A가 일상적이고 안정적인 사업 과정의 부분일 때 성공 가능성도 높다"고 밝혔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
인수·합병(M&A)이 기업의 대표적인 성장 전략으로 자리잡았지만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만은 아니다. 주주나 경영진은 '1+1'이 10쯤 되는 꿈을 꾸지만 때로는 마이너스라는 참담한 수렁으로 빠지는 실패를 겪는다. 베인앤드컴퍼니가 최근 6개 선진국의 M&A 사례 700여건을 조사한 결과 성공 사례는 30%에 불과했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도 기업 인수의 65%가 기업 가치를 높이기보다는 오히려 낮췄다고 전했다.
딜로직은 전 세계 M&A 규모가 지난해 4조4470억달러,올 들어 9월까지 3조8500억달러에 달했다고 밝혔다. M&A가 실패하는 요인을 알아본다.
◆감정적인 판단이 판을 망친다
1999년 주방용품 업체인 뉴웰은 동종 업계에서 이름을 날리던 러버메이드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저렴한 플라스틱 상품을 주로 생산하는 뉴웰과 고급 브랜드로 유명한 러버메이드가 힘을 합치면 주방 업계를 주름잡을 수 있을 것이란 계산이었다. 러버메이드는 매각가로 58억달러를 제시했다. 뉴웰이 해온 M&A 중 최대 규모의 사업보다 10배 높은 금액이었지만 뉴웰의 자신감은 확고했다.
인수 제안부터 계약서에 서명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해야 3주일. 피인수 기업을 깊숙이 파악하기엔 너무 짧은 기간이었다. 러버메이드의 화려한 실적에 가려져 있던 형편없는 소비자 서비스와 과도한 할인 전략 등 근본 문제가 곧바로 불거졌다. M&A 2년 후 뉴웰의 주식 가치는 반으로 떨어지는 등 부진을 면치 못했다.
이처럼 서두르다 나중에 곤란을 겪는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특히 정보기술(IT) 분야에서 이 같은 실패가 잦다. 늘 새로운 기술이 등장해 무대를 뒤집는 곳이 IT 분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초조함과 공포 때문에 이성적인 판단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IT 분야에서 최악의 M&A 사례로 꼽히는 타임워너와 아메리카온라인(AOL)의 합병에서도 이를 엿볼 수 있다. 미디어 제국 타임워너는 2000년 새로이 부상한 닷컴 업계에서도 주도권을 장악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해결책으로 떠오른 것은 거대 인터넷 회사인 AOL과의 합병. 2840억달러라는 사상 최대의 비용을 들였다. 이렇게 2600만명의 인터넷 가입자와 워너브러더스,케이블채널 CNN과 HBO 등을 갖춘 세계 최대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그룹이 탄생했다.
하지만 곧바로 닥친 닷컴 산업의 붕괴와 AOL의 실적 부진으로 시장 가치는 75% 급감했다. 2003년 합병회사의 명칭인 AOL타임워너에서 AOL이란 이름은 아예 삭제됐다.
◆M&A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사업환경의 변화나 실적 감소에 부딪칠 때 M&A에 대한 유혹은 커진다. 시장이 요구하는 근본적인 체질 변화보다 관련 기업을 인수해 상황을 타개하는 게 간단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M&A가 사업상 문제를 모두 해결해줄 것이라는 기대는 금물이다.
장난감 제조업체 마텔은 1999년 핵심사업의 매출이 감소세에 접어들자 M&A로 이를 극복하고자 했다. 파격적인 도전을 즐겨하던 질 배러드 회장은 아동용 교육 소프트웨어업체인 러닝 컴퍼니를 인수해 교육까지 아우르는 종합 회사로 키우고자 했다. 투자자들은 바비 인형과 교육 소프트웨어 산업 사이에 무슨 연관성이 있냐고 질문했지만 구체적인 답변은 없었다. 잘못된 업종 선택으로 5억달러에 이르는 분기별 손실액을 기록하던 마텔은 1년4개월 만에 러닝 컴퍼니를 되팔았다.
통신업체 AT&T도 기술 변화 앞에서 고민을 거듭했다. 전통적인 유선전화 사업의 한계를 깨닫고 광역 케이블 사업에 눈을 돌린 것까지는 좋았다. 1999년 AT&T는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케이블 회사 TCI를 인수한 데 이어 다음 해엔 1위 회사인 미디어원까지 사들였다.
하지만 1000억달러라는 과도한 인수 비용이 두고 두고 발목을 잡았다. 거기다 닷컴 산업의 거품이 꺼지면서 AT&T의 가치는 급속도로 빠지기 시작했다. 위기를 느낀 A&T는 야심차게 시작했던 케이블 사업 자산을 다시 팔아치워야 했다. 잇따른 인수 실패로 허약해진 AT&T는 2005년 경쟁사인 벨SBC에 매각되기에 이르렀다. 같은 기간 경쟁 업체 버라이즌이 M&A 대신 대규모 자체 투자를 통해 광역 케이블 분야에 성공적으로 진입한 것과 다른 결과였다.
◆문화 차이가 발목 잡는다
조직의 문화적 차이와 특수성도 실패를 낳는 요인이다. 다임러의 크라이슬러 인수가 실패에 그친 이유로도 조직 문화의 차이가 꼽힌다. 완고하고 서열을 중시하는 독일(다임러)의 조직문화와 자유롭고 성과 중심인 미국(크라이슬러)의 문화가 끝까지 대립했다는 것이다.
미국 식품 업체 퀘이커오츠는 1994년 자사의 스포츠음료 게토레이가 히트하자 주스 회사 스내플을 인수해 음료 업계에서 영향력을 더 넓히고자 했다. 문제는 두 조직의 대조적인 스타일이었다. 퀘이커오츠가 전형적인 마케팅 이론에 따라 움직이는 '학구파'라면,스내플은 파격과 실험을 내세우는 '괴짜'였다. 직원을 광고 모델인 '스내플 레이디'로 내세우고,인기 라디오 토크쇼 진행자를 브랜드 후원자로 내세우는 등 스내플 특유의 '아마추어리즘'은 늘 신선한 반응을 일으켰다.
하지만 퀘이커오츠는 자신들의 전통적인 마케팅과 경영 방식을 스내플에 그대로 적용하려 했다. 스내플 레이디를 해고한 데 이어 후원자였던 토크쇼 진행자와도 관계를 끊었다. 느낌과 재미를 강조하는 데 익숙했던 스내플 직원들은 반발하고 나섰고 기존 이미지마저 퇴색되면서 스내플의 판매량은 급감했다. 결국 퀘이커오츠는 스내플을 매입 시세(17억달러)의 5분의 1도 안 되는 3억달러에 팔아야 했다.
◆일상적인 사업 과정일 때 성공 가능성 높다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 최근호는 M&A 실패 사례를 통해 '대규모 딜일수록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을 내렸다. 달라지는 시장 상황에 대한 초조함, M&A로 기업 규모와 실적을 획기적으로 키울 수 있다는 과도한 자신감,빠른 성장을 위해 조직 문화의 차이를 무시하는 성급함 등이 대규모 M&A에서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M&A를 여럿 거치면서도 늘 탄탄한 기업 실적을 유지해온 인터넷 장비 업체 시스코는 그런 의미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시스코는 종종 손익분기점에 다다르지도 않은 신생 기업들을 사들인다. 확고한 비즈니스 로드맵만 갖고 있다면 당장의 수익 확대에는 목숨을 걸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스코에서 M&A 전략을 책임지는 네드 후퍼 부사장은 "우리는 단기간에 수익을 높이려는 목적으로는 절대 M&A를 하지 않는다"며 "M&A가 일상적이고 안정적인 사업 과정의 부분일 때 성공 가능성도 높다"고 밝혔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