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왕좌왕 지도부 파행 자초" 지적

대통합민주신당이 대선을 불과 70여 일 앞둔 시점에서 사실상 통제불능의 자중지란에 빠지면서 범여권 내부에서 `이대로 가다간 대선은 해보나 마나'라는 식의 위기의식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신당 후보간 부정선거 공방이 선두를 달리고 있는 정동영(鄭東泳) 후보에 대한 경찰 수사와 전격적인 압수수색 시도라는 초유의 사태로까지 발전하면서 신당에 대한 국민의 여론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고, 경선 자체가 무산될 지도 모른다는 근본적인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대선후보 지지율 경쟁에서 한나라당 이명박(李明博) 후보가 50%대의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는 데 비해 범여권은 가장 높은 정동영 후보가 10% 안팎에 불과하고 여타 후보들은 한 자릿수를 면치 못하는 부진이 계속되고 있어 신당은 그야말로 `내우외환'의 지경이다.

정동영 후보는 8일 연합뉴스 기자와 만나 "남북정상회담으로 국정지지도도 올라가고 잔칫상이 차려진 셈인데 우리 스스로 걷어차는 형국으로, 이런 흐름이 계속되면 대선을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에게 진상하는 결과가 된다"며 경선 정상화를 강하게 주문했다.

손, 이 두 후보 역시 오는 14일 `원샷 경선'에 참여하겠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밝히고 있지만, 양 캠프 소속 의원들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손 후보측 설훈 전 의원은 `원샷 경선' 실시 여부에 대해 "이래 가지고 경선이 되겠어. 완전 개판"이라며 "지금 상황이 이렇게 되면 (14일 경선도) 불투명하다"며 무산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당 안팎에서는 설사 천신만고 끝에 경선이 치러진다고 해도 `경선 불복종' 등 심각한 후유증이 불거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이처럼 신당의 경선이 정당사상 유례없는 중단 사태와 이전투구, 고소.고발전으로 얼룩지게 된 데는 주자들간의 과열경쟁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이지만, 지도부가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한 것도 간과할 수 없는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실제로 신당 오충일(吳忠一) 대표는 이날 아침 확대간부회의에서 "대구 유세는 예정대로 할 생각이나 지지세력간 충돌이 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많다"며 애매모호한 입장을 밝혔다가 개최 여부를 스스로 결정하지 못한 채 경선위에 결정권을 넘기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

신당은 이날 오전 당산동 당사에서 "젊은 세대가 모바일 투표에 참여해 새로운 선거문화를 만들어달라"고 호소하면서 국민경선 정상화 및 모바일(휴대전화) 투표 개시 선언식을 가졌지만, 공허한 이벤트성 행사에 그쳤다.

경찰의 압수수색 시도 사태까지 초래한 명의도용 사건 등 선거인단 접수를 둘러싼 잡음과 혼탁 양상 역시 당 지도부가 초기에 중심을 잡고 원칙에 따라 대처했더라면 최악의 상황을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지도부의 무능과 리더십 부재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양길승 당 국민경선위원장은 이날 당산동 당사에서 열린 회의에서 "경선위가 결정한 것을 힘있게 추진하지 못하고 다시 변경하는 일이 이뤄져서 이루 말할 수 없이 부끄럽고 죄송하다"고 자괴감을 드러냈다.

이런 가운데 범여권 장외주자인 문국현(文國現) 전 유한킴벌리 사장이 이날 낮 신당 소속 의원 7∼8명과 오찬회동을 갖기로 하는 등 내달 4일까지 창당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문 전 사장과 신당 일부 의원들의 연대가 가시화되고 있다.

신당의 경선이 혼탁의 늪으로 빠져들면서 새로운 대안을 찾아 이탈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되는 것으로 해석된다.

한편 이인제(李仁濟) 경선후보의 독주체제가 굳어져 가는 민주당은 범여권 후보단일화 시기를 11월 하순으로 늦출 방침임을 시사해 주목된다.

민주당 박상천(朴相千) 대표는 이날 "후보단일화를 추진해야 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후보단일화 시기를 11월 하순으로 최대한 늦추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다"며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들은 2년여간 대선 선거운동을 한 반면, 민주당 후보들은 이제 두달 남짓 선거운동을 했기 때문에 민주당 후보들이 국민을 접촉하고 자신을 홍보할 충분한 기회를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연합뉴스) 맹찬형 기자 mangel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