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근무 중인 하나은행 PB센터 '골드클럽'의 경우 금융자산 5억원 이상 고객들을 대상으로 PB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고객들은 VIP룸에서 따로 금융상품에 대한 설명을 듣고 PB들로부터 재테크 시장 전반에 대한 컨설팅 서비스를 받기도 한다.

금융상품만 5억원 이상 굴리는 고객이라고 하면 대한민국 자산 순위 상위권에 속하는 명실상부한 부자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부동산 등 실물자산 가격 상승 등의 요인으로 돈의 가치가 떨어지면서 5억원 이상 금융자산을 굴리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예전에 비해 손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국내 주요 경제연구소들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국내 자산가들이 보유하고 있는 총 자산에서 금융상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5분의 1(20%) 정도다.

(현대경제연구소가 작년에 내놓은 '한·미 가계자산 비교와 시사점'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2006년 5월을 기준으로 우리나라 가구당 평균 총 자산은 2억8000만원이고 그 중에서 76.4%는 부동산이 차지하고 있다.

PB 업계에서는 고객들이 보유한 부동산 비중이 이보다 약간 많을 것으로 짐작한다) 이 비율을 적용해보면 금융자산 5억원을 굴리는 고객의 경우 총 자산은 25억원 정도가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상당수 PB 고객들이 거주하고 있는 강남의 경우 132㎡짜리 아파트가격이 대략 15억∼20억원 상당이다.

금융자산과 거주 중인 집을 제외하고 남은 자산은 5억원 정도다.

요컨대 강남 고객들의 자산 포트폴리오는 '내집(15억원)+은행 PB센터에서 운용 중인 금융자산(5억원)+알파(5억원)'와 같은 식으로 비교적 단순하게 구성돼 있는 셈이다.

전문직에 종사하는 맞벌이 부부라면 결혼하고 나서 10년 이상 한눈 팔지 않고 열심히 저축과 투자를 병행하면,쉽지는 않겠으나 이 정도 부(富)를 축적하는 게 '못 오를 나무'라고만은 볼 수 없다.

실제로 금융자산 5억원 정도를 보유한 고객들은 일반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재테크 성향을 보인다.

주변 사람들의 재테크 성공담에 혹해 올초에 덜컥 중국 펀드에 가입했다가 수익률이 한때 급락하자 중도 환매한 고객들도 적지 않다.

그렇지만 은행들이 '슈퍼 부자(Super Rich)'로 구분해 내부적으로 따로 관리하고 있는 금융자산 30억원 이상(총 자산 150억원 이상)짜리 부자들은 이들과는 또 다른 재테크 성향을 보인다.

슈퍼 부자와 일반 부자의 대표적인 차이점으로는 '인내심의 정도'를 꼽을 수 있다.

주식이라든지 부동산의 가치를 정확하게 판단해 '이것은 돈이 된다'는 판단이 서면 단기적인 위기에는 결코 일희일비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30억원대의 금융자산과 70억원대의 부동산을 보유한 A씨가 대표적인 사례다.

A씨의 경우 1997년 외환위기를 자산 축적의 '발판'으로 삼은 케이스다.

지금도 살고 있는 대치동 소재 40평형대 아파트가 7억원 안팎 하던 시절.은행에서 2억원가량의 대출을 받아 집을 마련했던 A씨는 외환위기가 터진 이후 순식간에 금리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자 매각을 신중하게 검토했다.

그런데 양재천과 대모산 등 주변의 자연환경과 교육환경이 마음에 들었던 부인이 집 팔기를 강력하게 거부했다고 한다.

몇 차례 부부싸움 끝에 '애들하고 마누라가 좋아하는데,버틸 때까지 버텨보자'고 마음을 바꿔먹은 A씨의 집은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가격이 폭등했다.

이 일을 계기로 A씨는 주식이나 부동산이나 투자를 할 때 투자 대상에 대한 확신이 들 경우 일단 사고 장기간 보유하는 바인 앤드 홀드(Buy&Hold) 전략을 투자의 기본 원칙으로 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결과 100억원대 자산가로 성장할 수 있었다.

대표적 강남 아줌마인 A씨 부인의 뒷심이 오늘날의 그를 만든 셈이다.

물론 이 같은 전략의 밑바탕에는 '금융자산만 수십억원 보유하고 있는데,수천만원 정도는 까먹어도 괜찮다'는 자신감이 일부 깔려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슈퍼 부자들의 투자 행태가 수십억원대 자산가가 된 이후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게 아니라 서민시절부터 지속돼 왔다는 점을 감안하면,부자가 되기를 바라는 샐러리맨 입장에서도 배울 게 있지 않을까.

슈퍼 부자인 강남 아줌마들과 식사를 같이하며 대화를 나누다 보면,세대를 뛰어넘어 생각하는 혜안에 감탄할 때가 많다.

특히 현재 자신이 보유한 자산을 관리해 재산을 증대하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이 축적한 부가 자식 세대로 원활하게 이전되도록 하는 데도 매우 관심이 높다는 점은 특이하다.

이런 고객들을 볼 때마다 '나의 노력 여하에 따라 자식들의 행복의 정도도 달라지겠구나'라는 생각도 들어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최철민 하나은행 선릉역 골드클럽 PB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