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는 생물학적 숫자에 불과해요.

아흔 세 살이지만 붓을 들면 아직도 걷잡을 수 없는 감흥이 일거든."

국내 최고령의 현역작가 전혁림 화백(93)이 오는 11~25일 서울 팔판동 갤러리 아이캠에서 개인전을 갖는다.

그는 "미학의 도(道)는 멀고도 험하지만 창작세계에는 나이도 정년도 없으니 붓질을 통해 삶의 활력을 얻는다"고 말했다.

고령이지만 그림에 대한 그의 열정은 후배 작가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청년같은 생명력으로 아흔이 넘도록 그림에만 매달렸다는 의미에서 이번 전시 주제도 '아흔 셋 전혁림,새 그림전'으로 붙였다.

전 화백은 제도권 미술교육을 전혀 받지 않고 줄곧 통영에 머물며 고향의 아름다움을 화폭에 담아왔다.

그가 서울화단에 데뷔한 것은 회갑을 맞은 1975년이다.

뒤늦게 작품성을 인정받아 일흔 다섯이 되던 1989년에 호암미술관에서 작품전을 열였다.

2002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올해의 작가'로 선정되는 등 미술계 내 위상이 크게 높아졌지만 '환쟁이'로서의 자세는 바뀌지 않았다.

전 화백은 요즘도 경남 통영의 작업실에서 하루 10시간 정도 화폭과 마주한다.

그렇게 작업실에 앉아 있어야 즐겁고 자유롭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하루에 6~7시간 정도 그림을 그려요.

하지만 요즘 전시회를 앞두고 밤낮없이 작업에 매달리고 있어요.

심지어 꿈속에서도 그림을 그립니다.

이번 전시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인지 화업 70년에 이렇게 그림이 잘 되는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그에게 그림은 대상이 준 감동을 캔버스에 옮기는 작업이다.

70년에 달하는 화력만큼이나 작품 수도 많다.

수정에 수정을 거듭해 지금까지 완성한 작품이 7000여점(도자기 포함)에 이른다.

전 화백은 그동안 통영 앞바다와 고기잡이 배,기러기 등을 빨강 파랑 등 원색을 통해 추상적으로 표현해 왔다.

그러다가 2005년부터 작품이 다소 변하고 있다.

화면이 좀 밝아진데다 다양한 색면에 나비, 새 등 사물을 집어넣거나 달과 해, 파도 등의 위치 변화를 시도했다.

"철학(사상)과 문학적인 질감(이야기)이 없으면 그림이 살아 움직이지 않아요.

어린시절부터 헤세,칸트,헤겔 등의 문학과 철학서를 탐독했던 것이 최근 내 그림의 자양분이 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번 출품작 중에도 '한국 풍물도' 등 100호가 넘는 대작이 4점이나 있어 왕성한 창작의욕을 느끼게 한다.

전통적인 민화를 현대적 감각으로 부활시킨 '민화로부터'시리즈를 비롯해 '구성''호수' 등 40여점의 전시작들은 모두 올해 들어 그린 신작들이다.

그는 "내 작품세계와 그 가치를 지키는 것은 오직 나뿐일 것이고,찾는 이가 없어 고독하다면 그 역시 숙명"이라며 "붓을 들고 캔버스 앞에 쓰러져 숨을 거두는 것이 소원"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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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갑 기자 kkk10@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