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달러화가 세계 기축통화로서의 위상을 상실할 지경에 처했다.

자기 나라 돈 가치를 달러화와 연동시킨 '달러페그제'국가들은 폐지를 검토하고 있다.

달러화 약세는 FRB(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지난 18일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하하면서 예정됐던 현상이다.

금리인하로 달러화 자산에 대한 투자 메리트가 줄어든 만큼 비달러화 자산으로 갈아타려는 시도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하락 속도가 예상보다 빠르다는 점이다.

기준금리 인하폭이 예상보다 큰 0.5%포인트에 달한데다가 금리를 추가로 인하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오면서 달러화에서 빨리 발을 뺄수록 유리하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그러다보니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파문으로 미 달러화 자산에 대한 투자를 망설이던 글로벌 자금들은 안전자산인 금(金)을 비롯한 원자재와 비달러화 자산으로 눈을 돌리게 됐다.

견조한 성장세를 이어가는 유럽연합이나 역시 성장세가 탄탄한 캐나다 등으로 돈이 한꺼번에 몰려 달러화의 하락 속도가 더욱 가팔라지게 됐다.

이러다보니 세계 기축통화로서의 달러화 위상은 형편없게 됐다.

달러화는 1944년 브레튼 우즈 체제가 도입된 이후 전 세계 기축통화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재정적자와 함께 경상적자가 늘어나 달러화가 약세를 보이면서 위상은 흔들리고 있다.

달러화가치가 더욱 하락할 경우 기축통화의 지위를 유로화에 내줄지도 모른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미 전 세계 외환보유액에서 달러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 3월 말 현재 64.2%로 전분기보다 0.4%포인트 감소했다.

반면 유로화 비중은 25.9%에서 26.1%로 높아졌다.

더욱이 그동안 '달러화 페그제'를 유지해오던 국가들도 잇따라 페그제를 포기하고 있다.

지난 5월과 6월 쿠웨이트와 시리아가 달러 페그를 폐지한데 이어 사우디아라비아마저 조만간 달러 페그를 폐지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사우디는 페그제 국가인 만큼 미국이 금리를 내리면 자국통화인 리얄화를 유지하기 위해 자국 금리를 낮춰야 하지만 일단 금리인하를 보류,페그제 포기로 가는 게 아니냐는 추측을 낳고 있다.

뿐만 아니다.

달러화는 원유시장에서의 기축통화 역할도 흔들리고 있다.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두바이유,브렌트유 등 3대 원유의 가격은 달러로 매겨진다.

그러나 달러화가 하락하다보니 유가가 보합을 유지하더라도 산유국들의 구매력은 줄어든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선 유가를 높이는 수밖에 없다.

최근 유가가 강세를 보이는 이유 중 하나다.

그렇지만 달러화 약세가 쉽사리 진정될 것 같지는 않다.

미 경기가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뉴욕멜런은행의 마이클 울포크 외환전문가는 다음 달 말까지 달러화 가치는 유로당 1.42달러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뉴욕=하영춘 특파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