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11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긴급 기자간담회를 갖고 변양균 전 정책실장 및 정윤재 전 의전비서관 등 청와대 인사 연루 의혹사건을 비롯,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고소건, 청와대의 대통합민주신당 경선 개입 의혹 등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다음은 노 대통령과의 일문일답.
◇`변양균 스캔들'
--변 전 실장 파문에 대해 `깜도 안된다'거나 `소설같다'고 했지만 결과는 정 반대다.

이에 대해 국민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해달라.
▲제가 지금 참 난감하게 됐다.

제 입장을 정확히 표현하면 `참 할 말이 없게됐다' 이렇게 말해야겠다.

제가 매우 황당한 건 믿음을 무겁게 가지고 있던 사람에게 그 믿음이 무너졌을 때 그것이 얼마나 난감한 일일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저는 스스로의 판단에 대해서 비교적 자신감을 갖고 처신해왔던 편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렇게 크게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해 왔는데 이번에 그 문제에 대해 스스로의 판단에 대한 자신이 무너진 것이다.

그래서 무척 당황스럽고 힘들다.

국민께 입장을 표명하는 게 옳지 않느냐고 일부 비서진에서는 건의하지만, 지금도 전반적인 상황을 정확히 모르면서 어떤 방향으로 말을 하면 좋을지에 대해서 판단을 세우기 어렵다.

또 확정되지 않은 사실을 전제로 입장을 표명하면 뒤에 가서 또 난감해질 수 있을 것 같아서 조금 입장이 곤혹스럽고 어렵지만 결국 이것도 검찰수사를 기다려서 결과가 확정되는 대로 정리해서 국민께 입장을 말씀드리겠다.

◇정윤재 의혹
--정윤재 전 의전비서관 사건은 대통령 측근과 관련된 의혹이다.

어떻게 생각하나.

▲정 전 비서관은 1987년 이전부터 잘 아는 사람이고 1988년 내가 국회의원에 입후보 했을 때 연설기법에 관해서 저를 좀 도와줬던 인연부터 지금까지 끊어졌다 이어졌다 아주 인연이 깊은 사람이다.

본인이 유감스럽다고 국민 앞에 사과했듯이 결국 그 사람이 주선한 자리에서 뇌물이 건네졌고 고위공무원이 결국 처벌받게 됐으니까 그 점에 관해 부적절한 행위였고, 유감스런 일이다.

본인이 이미 사과했지만 그 정도로 책임이 끝나는 일인지 숨겨진 뭐가 더 있는지는 저도 정확히 알 수 없다.

뭐가 있을 거다 없을 거다 라는 짐작은 제 가슴속에만 갖고 있지, 표명할 수 없다.

제가 가진 짐작일 뿐이지 확신일 수 없고, 검찰수사 결과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만일 수사결과 그에게 심각한 불법행위가 있다면 이것은 `측근비리'라고 이름을 붙여도 제가 변명하지 않겠다.

저와 그 사람의 관계로 봐서 제가 사과라도 해야 될 문제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지금 아무 사실도 확정되지 않았다는 거다.

저는 수사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결과에 따라 입장을 말하겠다.

◇레임덕
--대통령은 임기말까지 권력누수 없는 국정운영을 강조해왔지만 최근 청와대 인사 연루 사건들로 권력누수 우려가 있다.

이에 대한 생각을 밝혀달라.

▲`권력누수다' `아니다'는 주관적 판단이 많이 들어갈 수 있는 문제이다.

권력누수의 기본개념에 대해선 우리사회의 통념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초법적 권력 시절에 만들어진 권력누수라는 개념이 법치정부에 와서도 그냥 쓰이고 있는데 이것은 정리했으면 좋겠다.

법치정부에서는 엄격한 의미에서 지금까지 우리가 생각해왔던 권력누수는 잘 발생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권력누수가 `있다' `없다'에 대해선 정확하게 답할 수 없고, 그 동안 권력누수가 얘기되던 것이 당에 대한 통제력, 국회에 대한 통제력, 심지어는 정부와 일반사회에 대한 통제력, 공직사회 특히 공권력 조직에 대한 통제력 등이 권력누수 개념으로 논의된 것 같은데, 사고가 있었다고 해서 권력누수로 보는데 동의하지 않는다.

지금도 공직사회는 법에 따라 자기 할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고 믿는다.

국회나 정당에 대한 통제력은 임기초부터 행사하지 못했기 때문에 누수될 권력도 없는 게 내 사정이다.

◇범여권 경선 개입의혹

--대통합민주신당의 손학규 후보가 청와대가 자신의 캠프에 간 참여정부 출신 인사들에게 압력을 가했다는 보도가 있는데 확인해달라. 손 후보에 대한 생각에 변화가 있나.

범여권 대선후보 선출 기준이나 염두에 둔 후보가 있는가.

▲선거법 시비가 될 만한 얘기는 안 하는 게 좋겠다.

우리 선거법은 대통령을 `거세된' 정치인으로 규정해놓고 있기 때문에 거세된 정치인이 말을 함부로 하는 건 유리하지 않을 것 같다.

손 후보가 무슨 말을 하는데, 대체로 차기 지도자가 되겠다고 하는 사람들은 저와 참여정부를 공격하는 것을 선거전략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한나라당 후보는 당연히 그것을 선거전략으로 삼고 공격하고 있고, 옛날에 후보 하겠다고 하다가 그만둔 사람들도 그랬고, 열린우리당의 지도자라고 하는 사람들도 차별화라고 해서 참여정부 공격을 선거전략으로 채택했던 일이 있다.

그 때 그 때 바람이 바뀔 때마다 차별화 했다가 안 하는 척 했다가 차별화에 대한 태도를 바꿔가면서 오늘까지 오고 있다.

손 후보도 요새 하는 거 보니까 대통령과 각을 세우는 게 선거에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 같다.

근데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대통령이 다음 선거에 무슨 상관이 있느냐. 한국정치가 특수한 상황이었다 하더라도 지금까지 전임 대통령이 다음 대통령 선거에 나름대로 이런저런 마음으로 힘이야 썼겠지만 결정적 변수가 되지는 않는다.

졸렬한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경선 때 각 세우고 본선 때에도 각을 세울 건가.

필패 전략아닌가.

왜냐하면 한 묶음으로 스스로 생각하고 있는 정치세력 일부를 배척하는 행위이지 않느냐. 제가 아무리 지지도가 낮지만 상당수의 충성스런 사람들이 있다.

저의 정치적 신념이나 역정을 지지하고 존경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지난번 대선 때 표차가 몇 표였나.

그 이전 대선 때는 더 표차가 적었다.

살얼음판 선거과정에서 한나라당은 저를 표적으로 삼는 것이 효과있는 전략일지 모르지만 통합신당 후보가 그렇게 하는 것은 현명한 전략은 아닌 것 같다.

◇이명박 후보 고소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등에 대한 고소건은 계속 유지하는가.

▲정치가 성역인가. 정치적 행위는 법을 위반해도 책임을 묻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나. 선거에 영향이 있다고 범법행위를 용납하라는 게 무슨 논리인가. 정치도 후보도 선거도 법위에 있지 않다. 법에 따라 규제받아야 한다.

선거전략은 정정당당해야 한다. 그들 스스로 한 일은 생각하지 않고 정치적 효과만 갖고 얘기하는 법이 어디 있느냐. `법치주의' `특권없고 투명한 사회' `투명한 정권' `공작하지 않는 정권'이 저와 참여정부의 핵심가치다. 이 핵심가치를 아무 근거도 없이 공격했지 않느냐.

근거가 없으면 불법적 선거운동으로 당연히 처벌받아야 한다. 모든 사람들이 어느 편이 이기느냐에 관심이 있는데, 그것보다 원칙이 이기는 선거라야 그 선거 결과로 수립된 정부가 국민을 위해 제대로 일할 수 있고 역사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아무리 유능하더라도 원칙을 존중않고 원칙을 짓밟고 정권을 잡으면 국가 발전에도, 국민행복, 역사발전에도 기여할 수 없다.

특히 통합신당에서도 이상한 논평을 내놨는데 정치는 법 위에 있지 않고, 선거에 영향이 있다고 해서 면책될 수 없으며, 자기들의 대선 승리를 위해 남의 가치를 근거없이 훼손해선 안된다고 분명히 말하고 싶다.
저는 제 선거의 승부가 걸려 있는 많은 국면에서 불리하더라도 원칙을 포기한 것이 없다. 원칙과 원칙적 가치를 위해 어떤 불리한 상황도 감수했고 심지어 지난 대선 직전 1주일간 엄청난 주위의 권고와 압력을 무릅쓰고 원칙적 입장을 지켰다.

원칙 지키지 못하고 이기면 오히려 지는 것 보다 못할 수가 있다. 하물며 이번 선거는 제 선거판이 아니지 않나. 이 상황에서 선거 개입을 위해 원칙에 없는 고소를 했다는 건 저를 너무 모르고 하는 얘기거나 고의로 모욕하기 위해 한 얘기다.

선거개입 목적이 아니라 제일 중요한 건 원칙이다. 여권에서도 자꾸 제가 선거 도움 안되니까 고소.고발 하지 말라고 권고하는데 당신들 승리도 중요하지만 원칙있는 승리라야 가치가 가치가 있는 것이다. 원칙없는 기회주의자들의 싸움에 저는 별 관심이 없다. 원칙이 승리하길 바랄 뿐이다.

--이 후보가 남북경제협력체 지지 입장을 밝혔다.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이 후보와 이 문제를 논의할 의향이 있느냐.

▲지금 특정 후보와 남북경제를 협의할 적절한 시기는 아니다. 남북정상회담을 어느 정파에게 유리하도록 운영할 생각이 없다. 공정한 입장에서 지금 이 시기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 필요한 일을 할 것이다. 어느 쪽과도 정략적 대화를 할 생각은 없다.

이 문제와 관련해 선거를 앞두고 무슨 말을 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얘기가 과거 그 분이 말해왔던 원칙과 부합하느냐, 앞으로도 지켜질 것이냐가 중요하다. 저는 북핵문제, 남북관계, 남북정상회담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원칙을 말해왔고, 결과에서 제 말이 틀린 적이 없다.

◇남북정상회담

--한미정상회담에서 논의한 종전선언과 평화체제 문제를 내달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제안할 의향이 있나.

▲이제 선언도, 협상의 개시도 있을 수 있다. 협상은 종전에서 평화체제로 나아가는 일련의 협상 아니겠느냐. 제안할 생각이 있느냐 수준이 아니라 남북정상회담의 핵심의제다.

북핵문제를 하도 많이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저도 그것이 1순위 만큼 중요하다고 인정하지만 이미 그 문제는 풀려가고 있는 객관적 상황이라서 다음 단계가 중요하다. 다음 고개가 바로 평화정착 아니겠느냐. 평화정착에 관한 문제가 가장 중요하고 동시에 경제협력이 실질적으로 가속화되고 증진하는 것이 핵심주제다.

`북핵 북핵' 소리 높이는 건 정략적인 의미라고 평가한다. 이미 6자회담에서 풀려가고 있는데 김 위원장 만나서 북핵 말하라는 건 가급적 가서 싸움하란 얘기다. 거의 다 풀려가는 문제를 강조하면 회담 분위기가 좋겠느냐. 어떻게 한번 시빗거리 만들어 보겠다고 하는 방식의 북핵문제 강조는 한반도 평화, 남북관계 발전에 도움이 안된다.

(서울연합뉴스) 이상헌 기자 honeyb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