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들 십시일반 건축비 모아

고향 노인네 집수리를 해드렸다(…)

아담하게 양철집 개보수하고

돼지 잡아 집들이 하는날

세류리 슈퍼를 나온 동네 노인네 서넛

가루비누 상자 같은 걸

한 개씩 들고 오는 것이었다(…)

돼지껍데기처럼 쫀득쫀득한 마음들을

나는 무엇이라 해야 하나

평생지기 우정이라 하면 될까

곁에서 지켜보는 어머니도 마음 기꺼워

해바라기처럼 웃으시는데,

양마담 안 불렀능감,워째 안 뵈능 거 같은디?

어허 이 사람,대체 양마담이 누구여?

양지다방 간판만 뵈두 질색팔색

십 리는 돌아댕기는 사람보구

-차승호 '연적들' 부분



집수리 잔치에 초대받은 노인들이 가루비누 한 상자씩 사들고 기신기신 몰려들었다.

평생 친구사이지만 양지다방 양마담에 관한한 연적(戀敵)들이다.

다방에 죽치고 앉아 쌍화차만 시켜서 들이켰을 뿐 별 소득도 없는 상황.해바라기처럼 웃고 계신 안주인 있는 자리에서 누군가 양마담 안불렀느냐는 말을 우물우물 토해내고 만다.

기밀을 누설한 것이다.

화급히 사태를 수습하려는 바깥주인의 쩔쩔매는 모습이 눈에 보일 듯 생생하다.

이 정도의 파계(破戒)는 안주인도 눈감아 주시리라.세상은 좁고 시간은 많다.

즐거운 인생이다.

이정환 문화부장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