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신문이 지난 8일부터 10일까지 3회에 걸쳐 공정거래위원회에 대해 집중 보도한 기획시리즈 기사(무소불위 공정위)가 나온 뒤 공정위의 '마구잡이식 기업 조사'에 대한 기업들의 제보가 쏟아지고 있다.

기업들은 "공정위에 항의하거나 불응하기 힘든 기업들의 처지를 이용해 공정위가 조사권을 남용하고 있다"며 "영장에 의한 검찰 압수수색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은 조사 방식이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공정위는 해당 기업들에 일일이 전화를 걸어 "한경 보도가 사실과 다르다는 설명자료를 내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는 "강제조사권이 없어 마구잡이식 조사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모든 조사 관련 서류는 해당 기업의 동의를 받아 가져왔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당하는 기업 처지 너무 모른다"

A제약회사 관계자는 "외장 하드디스크를 가져와 회사 컴퓨터에 들어 있는 파일을 모조리 복사해가는 등 자료를 불특정 무제한으로 요구했다"고 제보했다.

B생명보험사 관계자도 "공정위 조사팀이 사무실 한 층의 책상과 캐비닛을 샅샅이 뒤지고 컴퓨터나 디스켓도 모조리 열어 봤다"며 "그 가운데 문제된 혐의와 상관없는 자료까지 훑어보고 영업기밀에 해당하는 서류까지 모조리 복사해 갔다"고 주장했다.

'동의를 받았으니 문제될 것이 없다'는 공정위 주장에 대해서도 불공정거래행위 혐의로 조사받은 C유통업체 관계자는 "어차피 조사를 받게 된 마당에 조사팀의 심기를 건드리지 말자는 심정으로 따르는 것을 공정위는 포괄적인 동의로 해석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회사업무 차질에 인식차

'기업들의 업무에 차질이 생긴다'는 대목에 대해서도 공정위는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

공정위는 한 은행에 대한 조사를 예로 들어 "직원 2~4명이 지하에 있는 고객접견실에서 해당 은행 관련자 4명만을 조사했는데도 마치 해당 업체 직원들이 상당한 고통을 받은 것처럼 보도한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은행업계 관계자의 얘기는 완전히 다르다.

"당하는 사람의 입장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반응이다.

그는 "공정위 조사단이 들이닥친 것만으로도 회사는 발칵 뒤집힌다"고 지적했다.

공정위는 또 "조사와 관련 없는 부서의 자료를 요구한 사실이 없고 그 과정에서 해당 업체 직원들과 마찰을 빚은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당사자인 D기업 관계자는 "상당히 광범위하게 조사를 받았으며 개인 다이어리까지 보여달라는 요구를 받은 일부 직원은 '사생활 침해 아니냐'고 항의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과잉조사 논란 없애려면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공정위는 법 위반 혐의가 있는 기업에 필요한 자료나 물건을 제출토록 명령할 수 있다.

문제는 어디까지가 '조사에 필요한 자료'인지는 법규상 명확하게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올해 초 공정위로부터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던 E정유사 법무팀 관계자는 "공정거래법 시행령에서 공정위가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는 자료만 압수해 갈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그 판단 역시 공정위의 자의적 해석에 달려 있어 현실적인 구속력을 갖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대형 법무법인에서 공정거래법 관련 사건을 맡는 F변호사는 "공정위 조사권에 관한 법규를 구체적으로 정비하고 필요하다면 법원의 통제를 받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차기현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