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탈레반에 납치된 한국인 희생자가 두 명으로 늘어나고 탈레반이 협박 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협상의 출구는 보이지 않고 있다.

1일 오후 4시30분(한국시간)을 최종 협상 시한으로 못박은 탈레반은 탈레반 포로 석방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인질을 추가 살해하겠다고 위협했다.

그러나 아프간 정부는 "수감자와 인질 교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못을 박았고,미국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어 우리 정부는 속수무책이다.

청와대는 31일 성명을 발표,탈레반의 요구를 "감당할 수 없다"고 밝혔다.

아프간 정부와 미국에 협조를 호소하는 것 외에는 뾰족한 카드가 없다는 얘기다.

◆탈레반 지도부 협상권 장악한듯

탈레반은 "협상 시한을 여러차례 제시했으나 아프간 정부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며 30일 오후 8시30분(현지시간·한국시간 31일 오전 1시) 심성민씨를 살해했다고 로이터와 AFP에 통보했다.

아프간 정부 협상단을 이끄는 미라주딘 파탄 가즈니주 주지사가 2시간여 전 TV에 나와 "협상 시한을 이틀 연장하는 데 탈레반이 동의했다"고 말한 것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다.

탈레반 대변인 유수프 아마디는 "협상 시한은 오마르가 이끄는 탈레반 지도자 위원회가 내린 결정"이라며 최고 지도자의 이름을 처음으로 언급했다.

무하메드 오마르는 2001년까지 정권을 장악했다가 미국의 침공 후 파키스탄으로 달아난 탈레반 지도자다.

이슬람 근본주의 교리와 명분을 중시하는 탈레반 최고 지도부가 인질 사태를 조종하고 있다면 몸값 협상으로 사태가 해결될 가능성이 희박하다.

아마디는 오마르의 대변인 무하메드 하니프가 올 1월 체포된 후 그 자리를 이어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정부는 사태 초기 아마디의 영향력이 제한적이라고 생각했다.

아마디가 가진 정보가 사실과 다를 때가 많았고,그의 주장과 달리 납치 세력이 몸값 흥정에 관심을 보였다는 점 때문이었다.

판단착오였거나,협상권이 지역 무장세력에서 그가 속한 중앙 탈레반으로 넘어갔을 가능성이 있다.

◆탈레반,여자들도 위협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의 협상은 사실상 중단 상태다.

아프간 대통령궁은 이날 "테러리스트의 요구를 들어주면 그들의 납치 사업을 부추기는 셈"이라고 못을 박았다.

아프간 대통령궁은 탈레반이 협상 시한으로 정한 1일 오후까지 아프간 정부의 입장을 탈레반에 통보할 것이라고 밝혔으나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여자 인질들을 우선 석방하라는 아프간 정부의 요구를 일축한 탈레반은 "우리는 여성이든 남성이든 어린이든 억류하고 죽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아마디는 "한국인 인질들은 기독교인이고 아프간인을 기독교로 개종하려고 온 사람들"이라고 규정했다.

여성이라는 관점보다 '기독교인' '적'이라는 데 무게를 두고 있는 것이다.

탈레반 측이 여성 인질 살해의 명분을 축적해 가고 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군사작전 아직 때 아니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또 다시 우리 국민의 인명을 해치는 행위가 일어난다면 좌시하지 않고 우리 국민들의 희생에 대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마땅한 수단은 없다.

정부가 쓸 수 있는 마지막 카드는 군사 작전이지만,사용 가능성은 높지 않다.

탈레반이 인질을 분산시켜 수시로 억류 장소를 바꾸고 있는 데다 산악지대에 은신하고 있어 정확한 타격이 어려워 작전에 들어간다 해도 인질을 구출할 수 있다는 확신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천 대변인은 "대화 노력을 포기할 때가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탈레반의 죄수 맞교환 요구에 대해 "아프간 정부의 어려움을 이해하지만 보다 유연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하길 바란다"고 촉구하고 국제사회에도 "무고한 민간인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이런 노력을 지지해줄 것"을 호소했다.

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