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인 23명의 구명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다.

납치 세력은 동료 23명의 석방을 요구했으나 아프간 정부는 '인질·수감자 맞교환'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각측이 언론 인터뷰를 통해 밝힌 입장이다.

실제 협상장에서 오가는 내용은 공개가 안되고 있다.

하지만 아프간 정부가 죄수 석방에 대해 부정적인 것은 사실로 보인다.

탈레반은 요구 조건이 수용되지 않자 협상 대리를 맡고 있는 아프간 정부에 협상 실권이 없다고 주장하며 한국 정부가 직접 협상에 나서라는 압박을 가했다.


◆"최고 사령관 석방하라"

아프가니스탄 내무 차관인 압둘 하디 칼리드는 23일 알자지라 방송에 "아프간 정부는 탈레반이 제시한 인질·수감자 교환안은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말했다.

아프간 내무 차관은 "아프간 정부는 국가 안보와 이익에 위배되는 협상을 하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납치 세력 대변인을 자처해온 유수프 아마디는 AFP통신에 "협상이 계속되고 있지만 잘 진행되지는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아마디는 "우리는 탈레반 죄수 23명의 석방을 요구했지만 정부를 대표한다는 사람들은 자신들에게는 죄수를 풀어줄 권한이 없다고 말한다"고 주장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납치 세력이 요구한 석방 대상자 명단에 탈레반의 가즈니주(洲) 최고 사령관이 포함돼 있다고 보도했다.

◆탈레반 협상 창구 재정비한 듯

협상 전망은 이날 오후(한국시간)부터 미궁으로 빠져들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오전만해도 "협상에 일정한 진전이 있다"고 말했다.

가즈니주 부족 원로와 납치 세력 간에 진행돼온 협상에 탈레반 중앙 조직이 개입한 정황이 있다.

가즈니주에서 한국인들을 납치한 세력은 탈레반을 자처했으나 2001년까지 아프간에서 집권한 탈레반과는 직속 관계가 아니라는 분석이 나왔다.

요구 조건이 전달되는 경로가 단일화돼 있지 않고,내용도 조금씩 다르다는 점에서 그렇다.

탈레반의 근거지는 남부 칸다하르인데 반해 납치 세력이 한국인들을 붙잡아 억류하고 있는 곳은 칸다하르에서 300km 이상 떨어진 가즈니주 카르바그라는 점도 이유였다.

아마디 역시 오전까지 "일정한 진전이 있다"고 말했으나 오후 어조를 바꿨다.

이날 탈레반 지휘관 압둘라 잔의 대변인을 자처한 사람이 아프간 이슬라믹 프레스(AIP)에 "협상이 성공하지 못할 것으로 본다.

한국 정부가 직접 우리와 대면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 후부터다.

탈레반 중앙 조직은 가즈니주 최고 사령관 석방같은 정치적인 요구를,납치 세력은 보다 실질적인 요구를 내세웠을 가능성이 있다.

◆정부 직접 협상 고심

탈레반 측이 한국 정부와의 직접 협상을 고집할 경우 정부는 결단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정부는 현재 아프간 정부 대책반에 합류해 후방에 물러나 있다.

아프간 정부 대책반은 가즈니주 정부,한국 정부 대표단,미국 동맹군으로 구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협상 전면에는 가즈니주 부족 원로들이 나서 있었다.

정부가 전면에 나설 경우 '테러리스트와 협상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깨지고 납치 세력의 기대치가 높아진다는 판단 때문이다.

최고 사령관 석방을 직접 요구해올 경우는 입장이 더욱 난처하다.

석방은 아프간 정부 소관이다.

그러나 아프간 정부는 독일과 미국 등 핵심 파병국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이날 현지 TV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협박에 굴하지 않는다.

추가 파병하는 방안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도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프간 파병국 중 미국은 동맹군,독일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평화유지군의 주력이다.

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