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기획업무가 10년 만의 '독립'을 엿보고 있다.

'독립'이라는 표현은 재무팀으로부터의 '홀로서기'를 의미한다.

통상 일반 기업에는 기획업무와 재무업무가 분리돼 있고 기능과 역할도 명확하게 칸막이가 쳐져있다.

하지만 삼성은 재무가 기획업무를 관장하고 있다.

다시 말해,재무통이 기획분야의 업무를 판단하고 의사결정을 내린다는 얘기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1995년 삼성이 자동차사업에 진출할 때만 해도 그룹 비서실(현 전략기획실)내 재무팀과 기획팀의 파워는 엇비슷했다.

모험과 도전,미래의 비전을 앞세우는 기획팀과 재무구조의 안정성과 현금 흐름을 중시하는 재무팀은 적절한 견제와 균형으로 총수를 보좌했다.

하지만 1997년 전대미문의 외환위기가 찾아오고 기획팀이 주도했던 자동차사업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세력 균형이 무너졌다.

'선택과 집중'을 내세운 재무팀의 현실적인 논리에 기획통들은 기댈 곳이 없었고,급기야 본연의 기획업무마저 재무팀에 넘겨주고 말았다.

기획팀에는 신사업 발굴 대신 △대관 업무 △경영환경 분석 등의 업무만 남게 됐다.

반면 재무팀은 강력한 구조조정과 과감한 경영혁신을 통해 삼성의 화려한 부활을 이끌었다.

삼성은 2000년대 들어 글로벌 일류기업으로 거듭났고 세계가 두려워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전략기획실과 주요 계열사들의 요직에 재무통들이 대거 배치된 것은 '실적있는 곳에 보상 있다'는 삼성의 경영원칙에 부합됐다.

하지만 최근 주요 계열사에 신사업 발굴을 위한 태스크포스가 설치되면서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는 분위기다.

한동안 잠잠하던 기획업무가 활기를 되찾고 있는 것이다.

물론 최종적으로 재무 분석 등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여건이지만 백지상태에서 '브레인 스토밍'과 같은 프로세스를 밟아보는 것은 실로 오랜만의 일이다.

차제에 기획 업무가 재무로부터 떨어져나오는 것 아니냐는 섣부른 관측도 없지 않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