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잡화 수입 판매업체 A사는 지난달 유럽산 'B 토트백'을 들여오면서 백화점 매장 판매가를 얼마로 할지를 놓고 고민했다.

이 토트백은 이탈리아 밀라노 현지 쇼핑가에선 23만원 정도에 팔리는 상품.이미 국내에 들어와 있는 준명품급 브랜드들도 35만원 안팎에 제품을 팔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 회사가 내린 결론은 "경쟁 브랜드보다는 높은 가격을 매기자는 것"이었다.

싸게 팔았다가는 이미지만 떨어질 뿐이란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39만6000원에 내놓은 이 제품은 삽시간에 다 팔려 현재 품절 상태다.


소비자들의 허영 심리를 공략한 '한국형 마케팅 전술'의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국내에서 판매되고 있는 유명 수입 브랜드 남성 정장,핸드백,화장품 등의 가격이 세계적으로 가장 비싼 수준인 데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KOTRA가 최근 한국과 일본·미국·프랑스·영국·호주·싱가포르·중국 등 세계 8개국의 백화점 판매가격을 비교한 결과 국내에서 168만원에 팔리는 '휴고보스' 남성 정장 한 벌이 일본 도쿄에서는 약 114만원,미국 뉴욕에서는 약 139만원에 판매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루이비통의 '스피디30' 핸드백 국내 가격은 71만원으로 도쿄(약 64만원)와 뉴욕(약 58만원)보다 7만~13만원 더 비싸다.

수입 화장품도 국내 소비자들이 '바가지'를 쓰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에스티 로더'의 아이 크림은 국내 백화점에서 7만5000원에 판매되지만 원산지인 뉴욕에선 약 4만4000원에 살 수 있다.

이 제품을 수입하는 파리(약 5만8000원)나 도쿄(약 5만7000원)에 비해서도 터무니없이 비싼 값이다.

수입 상품뿐만 아니라 백화점에 입점해 있는 국산 남성복과 여성복도 한결같이 비싼 수준이다.

웬만한 브랜드라면 정장 한 벌에 70만~100만원은 줘야 살 수 있다.

이처럼 한국에서 의류 화장품 등의 가격이 유독 비싸게 책정되고 그런데도 잘 팔리는 것은 소비자들의 허영심 내지 과시 욕구와 무관하지 않은 셈이다.

이정희 중앙대 산업경제학과 교수는 "지나치게 남을 의식하는 한국인들의 문화가 허영 소비심리로 연결돼 패션상품 가격을 부풀리는 데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며 "우리나라에서 명품 신드롬이 유별난 것도 한국에서 유독 두드러지는 베블런 효과 탓"이라고 지적했다.

베블런 효과(Veblen effect)란 허영심에 의해 비쌀수록 수요가 늘어나는 현상을 말한다.

수입 패션업체 관계자는 "비싸고 희소 가치가 크면 가방이건 화장품이건 순식간에 팔려나가기 때문에 업체로서는 고가의 브랜드 이미지를 유지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미지 산업에 속하는 화장품은 특히 국내 소비자들에게 고가 전략이 잘 먹히는 품목으로 꼽힌다.

화장품 업체들이 너도나도 고기능성의 프리미엄급 제품을 쏟아내면서 세트당 수십만원대의 초고가 제품이 백화점 매대를 차지하고 있는 게 단적인 예다.

화장품은 판매자가 자유로이 소비자 가격을 책정하는 '오픈 프라이스(open price)제'를 따르고 있기 때문에 소비자 가격을 통제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화장품업계 관계자는 "제품의 원가는 소비자가격 대비 15% 정도에 불과한 반면 고급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해 드는 광고·마케팅 비용과 운영비 등이 화장품 가격의 70%를 차지한다"며 "수입 화장품은 보통 수입원가에 4배를 붙여 소비자가격으로 책정하지만 마케팅 비용이 올라가면 7배까지 붙이기도 한다"고 전했다.

그는 "'샤넬'과 '부르주아'는 생산 공장이 같지만 광고 마케팅 전략에 따라 소비자들이 느끼는 이미지가 달라지면서 가격도 차이를 보이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안상미 기자 saramin@hankyung.com